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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규제독립성과 임의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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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8. 01. 09:31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원자력발전소는 안전규제는 사업자와 규제자의 대화다. 대면이건 서류건 만나서 묻고 답하는 것이다. 사업자는 인허가를 위한 서류를 제출하고 규제자는 이를 심사한다. 심사결과 미흡하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규제자는 질의를 하고 사업자는 답변을 통해 안전함을 입증한다. 무한 반복의 과정에서 규제자가 납득이 되면 해당 질의가 종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원전은 넓은 학문적 범위때문에 이 과정에 한 명이 아닌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동원된다. 규제자도 사업자도 마찬가지다. 사업자가 제출하는 원전의 안전성분석보고서(SAR)는 장과 절마다 어떤 내용으로 작성되어야 하는지 정해져 있다. 그래야 규제자가 나눠서 검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장과 절마다 담당자가 정해져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의 어떤 원전이라도 해당 분야는 1명의 규제자가 담당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일관된 규제가 이루어진다. 참으로 철저한 방식 중의 하나다. 그런데 문제는 규제자별로 규제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동일한 미국의 규정을 참조할 때도 적용의 깊이가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일치를 규제의 독립성이라는 이유로 방치할 것인지 아니면 규제기관 내부에서 이를 조정하는 것이 필요한지 생각해봐야 한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행정청으로 모든 규제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원전부문의 전문성을 가지지 못한 행정공무원이다. 따라서 기술지원조직(TSO)으로서 산하에 원자력안전기술원을 두고 있다. 실제적으로 원자력시설에 대한 규제심사와 현장검사는 대부분 원자력안전기술원에서 수행하고, 그 결과를 원자력안전위원회 사무처에 보고하면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최종 의결을 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 규제자간 규제의 심도를 조절하는 기구가 있느냐는 질문이 나올 것이다. 답은 '없음'이다. 심지어 기관내의 상급자가 하급자의 규제결정에 대해서도 관여하지 못하는 구조다. 모든 규제자가 지식과 양심과 지배욕이 같다는 전제하에 시스템이 짜여진 것이다.

우리는 이상적인 결과만을 가정해 제도를 만들지는 않는다. 제도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가정해 구축되어야 한다. 그릇에 담기는 물의 양은 가장 높은 벽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벽에 의해서 결정된다. 가장 낮은 벽보다 높은 벽은 재료만 낭비한 것일 뿐이다. 원자력안전규제도 분야별로 심도를 조정해 최적의 안전성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자력안전규제에는 '공정성'이라는 원칙도 있다. 규제자와 사업자가 공정해야 한다. 물론 한쪽은 칼자루를 쥐고 있고 한쪽은 칼날을 쥐고 있지만 공정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규제는 예측가능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규제가 부과되고 이전의 규제가 부인되고 강화되고 하는 것은 제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당한 수준에서 사전에 합의되고 규정화되어야 한다. 규제자의 임의규제가 독립성으로 오인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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