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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時雨) 김영재가 길 끝에서 만난 바다와 인간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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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4. 04. 23. 17:23

개인전 '길 끝에' 개최...5월 9~21일 인사1010갤러리
김영재 흑진주
시우(時雨) 김영재의 '흑진주'./인사1010갤러리
시우(時雨) 김영재 사진작가가 길 끝에서 만난 바다와 인간군상에 대한 성찰적 작업을 보여주는 전시가 열린다.

서울 종로구 인사1010갤러리는 김영재 개인전 '길 끝에'를 다음 달 9일부터 21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바다 사진들과 숟가락으로 형상화된 인간군상 시리즈를 선보인다.

김영재의 바다 풍경은 동양화의 운무산수화를 떠올리게 한다. 수묵 맛이 나는 사진으로 바다의 역동적인 기세를 잡아챈다. 잔잔한 해무를 배경으로 돌출된 돌덩이들은 언뜻 보면 유장한 산맥을 보는 듯하다.

인사1010갤러리 관계자는 "작가는 흑백사진에선 수묵의 맛을, 컬러사진에선 수묵담채화의 맛을 진국처럼 끓여내고 있다"면서 "또 하나의 놀라운 점은 선염(渲染)기법의 바림효과까지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염기법이란 동양화에서 분무기로 한지를 먼저 적시고 마르기 전에 수묵이나 채색을 가하여 표현 효과를 높이는 기법이다. 붓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 은은한 표현 효과가 나타난다. 안개 낀 산수의 흐릿한 정경이나 우중(雨中)의 정취, 으스름한 달밤의 풍경을 표현하는 데 제격이다. 먹이 번지면서 흐릿하고 깊이 있는 색이 살아나는 바림효과를 얻을 수 있다. 작가는 빛이 결핍된 환경에서, 예를 들어 흐린 날씨에 빛이 대상에 스며드는 순간을 포착해 다양한 스펙트럼의 바림효과를 살려내고 있다. 이는 고도로 숙련된 인내가 요구되는 작업이다.

제주도 흑돌 기둥
시우(時雨) 김영재의 '제주도 흑돌 기둥'./인사1010갤러리
최근 들어 그는 제주 해안의 주상절리에 꽂혀 있다. 해안에 육각형 단면의 돌기둥들이 규칙적으로 붙어서 수직을 이루는 풍경으로, 화산폭발이 만들어 놓은 절경이다. 작가는 여기서 바다라는 수평과 주상절리라는 수직을 절묘하게 포착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인간군상 시리즈도 소개된다. 작가는 어느 날 황학동 중고주방시장에서 숟가락 더미를 보고 문뜩 인간군상을 떠올리게 된다. 생명을 이어가고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숟가락을 들어야 하고 일을 해야 한다. 작가는 숟가락에서 인간 존재모습을 봤다. 의자 밑에 수북이 쌓여있는 숟가락 모습은 마치 돈, 명예,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아귀다툼의 정경이었다. 작가는 의자라는 자리에 기어오르기 위해 벌이는 전쟁터 같은 처연한 모습을 설치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사진으로 옮겼다.

작가의 숟가락 조형은 진화를 거듭해 어느 때부턴가 지구를 이루고, 한데 어우러진 인간군상의 형태를 띤다. 1980년대에 제작한 이응로 화백의 군상시리즈를 연상시킨다.

김영재 그림자
시우(時雨) 김영재의 '그림자'./인사1010갤러리
시우 김영재는 작가노트를 통해 "앞만 보고 달려 온 삶이다. 숨이 가쁠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예술은 나의 삶의 쉼표이자 나를 직시해 볼 수 있는 거울이 돼 주었다"면서 "물속에 빠지지 않고 수영을 하려면 물의 리듬을 타야 하듯 예술은 나의 삶의 리듬이 돼주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그는 "장터사진으로 시작해 바다사진, 그리고 숟가락 조형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결국 나의 예술의 여정이었다"며 "거기에 삶의 호흡이 있고 깨달음이 있었다. 나의 인생 스토리가 담긴 자서전이라 하겠다"고 밝혔다.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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