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齋中何所有 재실 안에 무엇이 있는가
左右皆圖書 좌우로 그림과 책이 가득하다네
竟夕晴窓裡 밤이 새도록 맑은 창 아래서 글을 읽는 동안
眼前作友余 그리움이 사라질 때까지 문밖에서 벗이 되어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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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오서看吾書’라는 제목의 이 시는 1730년 음력 5월(영조 6)에 쓴 작품이다. 영조는 동궁 시절에 《육오당시》를 지었는데, 여기서 ‘육오’는 식오전(食吾田·내 밭을 경작해 먹다), 음오천(飮吾泉·내 샘물을 마시다), 간오서(看吾書·내 서책을 보다), 안오면(安吾眠·내 잠을 편안히 즐기다), 수오분(守吾分·내 분수를 지키다), 낙오년(樂吾年·내 수명을 만끽한다) 등 6가지를 뜻한다.
영조의 육오 중 ‘내 서책을 보다’를 뜻하는 간오서는, 영조의 성실함과 늘 책을 가까이하는 군왕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시이다. 또한, 이 시를 지을 때 영조는 궁궐 편전에서 책을 보며 쓴 것이 아니고, 어머니 숙빈 최씨의 영혼이 잠든 소령원의 재실에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2년이 되던 늦은 봄날, 어머니가 너무도 그리워 소령원을 찾아 참배한 뒤 차마 발길을 돌릴 수 없었던 영조. 재실에 묵으면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새벽녘까지 책을 보았고, 어머니 또한 아들이 밤새 책을 읽는 동안 문밖에서 벗이 되어주었다.
궁녀 출신으로 숙종의 승은을 입어 영조를 낳은 뒤 아들이 왕이 되기도 전에 사망한 숙빈 최씨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다. 김용선의 《조선조 궁중 풍속 연구》에 따르면 “영조가 어머니에게 궁궐에서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힘들었냐고 묻자, 숙빈 최씨는 누비옷을 만드는 일이라고 대답하였다”라고 한다.
그날 이후부터 어머니의 삯바느질에 마음이 아팠던 영조는 누비옷을 입지 않았다. 소매가 해질 때까지 입었고 솜이 옷 밖으로 나올 정도로 검소했던 이유가, 바로 어머니가 침방나인이었기 때문이다.
영조는 어머니의 출신 성분 때문에 정치적으로 힘든 과정을 많이 겪었지만, 그때마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영조에게 정신적으로 큰 힘과 위로가 되었다. 비록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어머니였지만, 영조는 소령원을 찾아와 참배하고 재실에 앉아 그리움이 사그라질 때까지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어머니를 그리워했던 효자이다.
글/사진 이태훈. 에디터 박성일기자 rnopark99@asiatoda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