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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마음, 詩로 읽고 寫眞으로 보다! <영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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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일 기자

승인 : 2021. 12. 19.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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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조선 시대에 임금의 즉위식이나 대례식 등을 거행하던 근정전.
<영조>
1.與民同歡 백성들과 기쁨을 함께하다
國之爲國君爲君 나라가 나라답고 임금이 임금 노릇을 하는 것은
惟在與民同其歡 오직 백성과 기쁨을 함께하는 데에 달려 있네
粉華侈靡眩於眼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것이 눈앞을 현혹하더라도
豈如吾民同其歡 어찌 우리 백성과 기쁨을 함께하는 것만 같으리

영조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을 동서남북으로 둘러싸고 있는 월대.
<해설>
30세에 형 경종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아 51년 7개월 동안 정치를 펼쳤던 영조는, 근검절약하는 생활로 신하와 백성들의 모범이 될 뿐 아니라, 학문에 정성을 기울여 덕이 깊고 높았던 성군이었다. 또한, 침방나인 출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곤룡포도 많이 해 입지 않았고,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림으로 고생하면 자신도 수라상을 아주 간소하게 차렸다. 그 결과 군왕으로서의 검소함과 부지런함이 그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되었고, 시에서도 백성을 생각하고 위하는 진정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영조 다음으로 왕위에 오른 정조는 자신의 개인문집인 《홍재전서》 17권에 할아버지의 검소한 생활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였다.
“왕(영조)은 천성이 검소하여 어린 시절부터 비단옷과 명주 바지도 입지 않았으며, 입은 옷은 여러 번 세탁한 것이 많았다. 심지어 솜이 튀어나온 것들도 혹 있었다. 드시는 반찬 역시 늘그막까지도 몇 가지 안 되었으며, 만약 보통 때보다 그릇 수가 더 있으면 왕께서는 물리치고 들지 않았다. 곁에서 혹시라도 너무하시는 것 아니냐고 하면, “이것도 내게는 과하다”라고 하였다. 관찰사가 진상한 부채도 유선(油扇·기름종이로 만든 부채)이 아니면 쓰지 않았고, 또 쓰더라도 1년 이상을 썼다.”
이처럼 영조는 52년간 가장 낮은 자세로 늘 백성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했던 군왕이자, 백성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고, 백성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라고 생각한 임금이었다.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은 시에서도 여과 없이 드러난다. 시의 내용을 보면 임금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들과 기쁨을 함께하는 것이다. 임금은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향락과 쾌락을 좇을 수 있지만, 이런 행동은 백성을 괴롭히는 것이다. 백성들의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야 자신의 삶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영조의 통치철학이었다.
글/사진 이태훈. 에디터 박성일기자 rnopark99@asiatoday.co.kr
박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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