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호주 국방장관 공동성명, 북 '항복문서 등장 표현' 반발 CVID 사용
비건 부장관, 최선희 제1부상 발언 이례적 비판 "낡은 사고방식에 갇혀"
|
아울러 에스퍼 장관은 일본·호주 국방장관과의 화상 회담에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와 모든 범위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CVID)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북한을 불량국가라고 칭하고, 북한이 ‘항복문서에나 등장할 문구’라며 극도의 거부감을 표시한 표현을 다시 사용한 배경이 주목된다.
|
특히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8일 서울에서 가진 브리핑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실무협상 재개를 위한 자신의 카운터파트 임명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 제의를 거듭 거부한 데 대해 북한과 만남을 요청한 바 없다고 이례적으로 반박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북한에 대한 압박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비건 부장관의 발언은 북·미가 2018년 북핵 외교를 시작한 후 미국 고위 관리가 북한을 직접 비판한 드문 사례라며 미국이 북한과 곧 외교를 재개하는 데 관심이 없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고 해석했다.
비건 부장관은 기자들에게 “우리는 북한과 만남을 요청하지 않았다. 이번 방문은 우리의 가까운 친구이고 동맹국인 한국을 만나기 위한 것이고, 우리는 훌륭한 논의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겨냥해 “나도 한가지 점을 매우 분명히 하고 싶다”며 “나는 (최 부상)으로부터도 존 볼턴 대사로부터도 지시를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비건 부장관은 성명을 통해 “두 사람(최 부상·볼턴 전 보좌관)은 무엇이 가능한가에 대해 창의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부정적이고 불가능한 것에만 초점을 맞춘 낡은 사고방식에 갇혀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WP는 “비건의 구두 발언에는 왜 그런 언급이 포함되지 않았는지는 즉각 밝혀지지 않았다”며 “한국 언론은 그가 그런 부분을 단순히 우연히 놓쳤을 수도 있지만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했을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고 설명했다.
|
에스퍼 장관은 이날 취임 1년을 즈음해 국가국방전략(NDS) 목표 달성을 위한 노고를 격려하기 위해 군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NDS 성과에 더해 우리는 또한 지난 1년간 무수한 국제적 사건에 대응해 왔다”며 수십명의 핵심 국제 테러리스트를 제거한 테러방지 작전 수행 및 지원, 이라크·시리아에서의 ISIS(이슬람 국가 IS의 옛 이름)의 실제 칼리프국(칼리프가 다스리는 이슬람 신정일치 국가) 파괴 등 ISIS 격퇴, 페르시아만에서 남중국해에 이르기까지 항행 및 상업의 자유 보호 등 국방부 업적을 나열했다.
그러면서 “매우 비슷한 부류인 중국·러시아뿐 아니라 북한과 이란과 같은 불량국가에 의해 자행되는 공격적인 활동들을 억지해왔다”고 강조했다.
에스퍼 장관은 지난 2월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이 주최한 국방전략(NDS) 관련 기조연설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제56차 뮌헨안보회의에서 중국을 미국의 안보 전략에서 최대 도전 국가라고 한 뒤 2순위로 북한과 이란을 분류하고 ‘불량국가’라고 지칭했었다.
그 연장선에서 에스퍼 장관은 이날 연설에서 국가국방전략의 10대 목표 중 첫째로 우리의 노력의 많은 부분을 주도하고 뒷받침하는 우선순위는 국방부를 중국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과 러시아의 공조에 대한 미국과 동맹국 및 파트너들과의 조정된 전략을 강조한 뒤 ‘불량국가’ 이란·북한에 대한 국방부의 억지 노력을 설명했다.
|
미 국방부는 이날 에스퍼 장관과 린다 레이놀즈 호주 국방장관·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방위상과의 화상 회담 결과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도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그리고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등 중국 문제에 대한 공동 대처를 먼저 거론한 후 북한 문제를 언급했다.
3국 국방장관은 북한의 잇따른 탄도미사일 발사,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대한 모라토리엄(유예) 파기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긴장 고조 및 지역 안정 저해 행동 중단과 국제적 의무 준수를 주문했다.
그러면서 WMD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CVID를 강조하면서 ‘비핵화(denuclearization)’ 대신 ‘폐기(dismantlement)’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는 성명이 핵무기 대신 이를 포함한 더 광범위한 의미인 WMD를 사용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북한의 반발을 감안하면 CVID 사용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북한에 대한 원칙적인 대응과 기조를 같이 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은 지난 6일 영국 정부가 북한 강제노동수용소 관련해 2개 기관을 제재한 데 대해 지지 성명을 발표했고, 국무부는 지난달 24일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을 연장했다.
다만 CVID 사용이 트럼프 행정부의 비핵화 목표가 변화했다는 의미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공동성명에서의 CVID 사용은 일본·호주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대신 CVID 표현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국무부는 6일 비건 부장관의 7∼10일 한·일 방문 일정을 알리는 보도자료에서도 FFVD라는 표현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