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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最古) 왕흥사지 백제사리기 국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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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19. 04. 0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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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제공=문화재청
2007년 백제 왕실 사찰인 왕흥사지(王興寺址) 발굴조사 중 금당 앞 목탑 터 사리공(舍利孔·사리를 넣는 네모난 구멍)에서 찾은 현존 국내 최고(最古) 사리공예품이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577년이라는 제작 시기가 뚜렷하고 백제 왕실 공예품으로서 역사적·예술적 가치와 희소성이 있는 보물 제1767호 ‘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일괄’을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라는 명칭으로 바꿔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고 1일 밝혔다.

왕흥사는 부여 낙화암에 오르면 금강 건너편에 보이는 사찰 터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1996년부터 조사를 진행해 건물 배치를 확인하고 다양한 유물을 출토했다.

수많은 왕흥사 유물 중 백미로 꼽히는 문화재가 바로 사리기. 사리기는 참된 수행을 한 부처나 승려 몸속에 생긴다는 구슬 모양 유골인 사리를 보관한 용기를 지칭한다.

왕흥사지 사리기는 안에서부터 금제 사리병, 은제 사리호, 청동제 사리합 세 겹으로 구성됐다. 사리합 겉면에는 ‘정유년이월(丁酉年二月)/십오일백제(十五日百濟)/왕창위망왕(王昌爲亡王)/자위찰본사(子爲刹本舍)/리이매장시(利李枚葬時)/신화위삼(神化爲三)’이라는 명문을 새겼다.

명문은 “백제왕 창이 죽은 왕자를 위해 절을 세우는데, 2매였던 사리가 장례 지낼 때 신의 조화로 3매가 됐다”는 뜻으로, 이를 통해 사리기가 위덕왕(재위 554∼598)이 죽은 왕자의 명복을 빌고자 발원한 왕실 공예품임이 확인됐다.

아울러 삼국사기를 근거로 백제 법왕 2년(600)에 축조해 무왕 35년(634)에 낙성된 것으로 알려진 왕흥사의 실제 창건 시기가 정유년인 위덕왕 24년(577)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왕흥사지 사리기는 제작 시점이 명확하고, 사리공예품 가운데 연대가 가장 빠르며, 형태와 기법 측면에서도 완성도가 매우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단순하고 단아한 모습, 보주형(寶珠形) 꼭지, 주위를 장식한 연꽃 문양은 525년에 조성한 ‘공주 무령왕릉 출토 은제탁잔’과 639년에 만든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를 조형적으로 연결하는 의미가 있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한편 조선 후기 불화인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와 ‘김천 직지사 괘불도’, 고려 후기에 목은 이색·포은 정몽주와 함께 삼은(三隱)으로 불린 도은 이숭인(1347∼1392) 문집인 ‘도은선생시집 권1∼2’는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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