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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중국이 마치 자신들의 주요 지도자가 타계한 것처럼 애도를 표하는 것은 일단 그의 출신 성분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광둥(廣東)성 객가(客家) 출신의 화교라는 동질성이 아무래도 상당한 작용을 했다고 봐도 좋은 것이다. 또 그가 1976년을 시작으로 무려 33차례나 방중한 친중파 인사였다는 사실 역시 거론해야 할 것 같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가 마오쩌둥(毛澤東)에서부터 시진핑에 이르는 중국의 1-5세대 지도자들을 모두 만나 정상회담을 가진 지구촌 유일의 정치인이었다는 사실도 무시하기 어렵다.
당연히 그는 중국 전, 현직 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 적지 않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78년 덩이 싱가포를 방문했을 때의 에피소드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총리 공관에서는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되는 규정이 있었으나 그를 배려해 재떨이를 준비한 것이다. 하지만 덩도 이때 예의를 지켜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고 한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92년 9월 그가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를 방문했을 때에도 이어졌다. 그는 당시 개혁, 개방 정책의 지속적 추진을 위한 돌파구를 찾던 덩에게 싱가포르산업단지의 설립을 제의, 그 자리에서 동의를 얻어냈다. 이후 싱가포르 경제성장 모델을 참고한 이 단지는 장쑤성 뿐 아니라 중국을 대표하는 산업단지로 성장했다.
시진핑 총서기 겸 주석과는 2007년 방중 때 인연을 맺었다. 당시 리 전 총리는 “시야가 넓고 문제에 대한 통찰력의 뛰어나다. 하지만 자신의 재능을 과시하지 않는다.”면서 시 총서기 겸 주석을 높이 평가했다. 나중에는 “만델라 같은 사람이다.”라고 극찬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기도 했다. 마치 덩샤오핑에게 “당신은 싱가포르의 지도자가 될 수는 있어도 나는 중국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한 말과 비슷한 극찬이 아닌가 보인다.
중국 정부는 29일로 예정된 그의 장례식에 조문단 파견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로서는 총리급 고위 인사가 단장으로 유력하다. 리커창 총리가 직접 조문단을 이끌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