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연료전지·소나까지 핵심기술 자립, HD현대·한화 ‘원팀’ 수주 총력
민수 조선 '원천기술 로열티' 장벽은 과제… "이제는 '설계·두뇌'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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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도 옥포만과 울산 현대중공업 독(Dock)의 수면 아래는 지금 거대한 '기술 지각변동'이 한창이다.
과거 독일 기술을 들여와 나사를 조이던 '조립 공장' 대한민국이 이제는 독자적인 설계와 핵심 부품을 무기로 전 세계 심해(深海)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부상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우리 군의 주력인 장보고-II 사업이 닻을 올릴 당시만 해도 한국 잠수함의 부품 국산화율은 38%에 불과했다.
잠수함의 심장이라 불리는 추진 체계부터 눈과 귀 역할을 하는 소나까지, 핵심 장비 앞에는 여지없이 외국 기업의 로고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25년이 지난 2026년 현재, 대한민국은 국산화율 80%를 돌파한 3000t급 잠수함을 앞세워 전 세계 방산 시장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독일 의존 끊어낸 '기술 독립'… 2주 잠항의 기적
K-잠수함 도약의 상징은 '도산안창호함'을 기점으로 한 장보고-III 사업이다.
이 사업을 통해 한국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독자 잠수함 설계·건조 국가 반열에 올랐다.
특히 잠수함의 생존성을 결정짓는 공기불요추진(AIP) 체계의 핵심인 '수소연료전지'를 국산화한 것은 방산사의 쾌거로 꼽힌다.
기존 독일산 연료전지에 의존하던 시절 수일에 불과했던 잠항 시간은 국산 기술 도입 이후 2주 이상으로 대폭 늘어났다.
수소 저장 기술 역시 세계 두 번째로 국산화에 성공하며 실전 배치를 마쳤다. 잠수함의 '눈'인 소나(Sonar) 체계와 '입'인 위성안테나, 그리고 전력 제어의 핵심인 인버터까지 중소·중견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매달린 결과, 'K-잠수함 생태계'라는 거대한 기술 그물망이 형성됐다.
문근식 교수(한양대, 전 잠수함 함장)를 포함한 K-해양방산 전문가들은 "과거에는 외국 업체가 부품 공급을 늦추거나 단종시키면 속수무책이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공급망을 완전히 통제하는 구조로 바뀌었다"며 "이것이 바로 '군사 주권'의 실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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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자립은 곧장 수출 경쟁력으로 치환됐다. 2011년 인도네시아에 잠수함 3척을 수출하며 물꼬를 튼 이후, 한국 잠수함은 이제 동남아를 넘어 북미와 유럽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현재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폴란드(오르카 프로젝트)와 캐나다(CPSP 사업) 등 수십조 원 규모의 대형 잠수함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과거 '수입국'이었던 한국이 이제는 잠수함 종주국인 유럽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글로벌 표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페루와의 공동개발 협력까지 더해지며 중남미 시장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단순히 배를 만들어 파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우리 기업들이 미 해군 지원함의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을 잇달아 수주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건조-운용-정비'로 이어지는 함정의 전 생애주기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는 방산이 일회성 판매를 넘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 모델'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민수 조선'의 뼈아픈 교훈… "로열티 없는 기술 강국 가야"
그러나 화려한 방산의 도약 이면에는 넘어야 할 '기술의 벽'도 존재한다.
세계 1위를 자부하는 민수 조선 분야, 특히 LNG 운반선 시장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배를 짓는 실력은 세계 최고지만, 화물창(저장탱크) 설계 등 핵심 원천기술은 여전히 프랑스 GTT 등 해외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배 한 척을 팔 때마다 수십억 원에서 백억 원에 달하는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구조다.
잠수함 산업 역시 이러한 '기술 종속'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선박 통합제어시스템(IAS) 등 고부가가치 소프트웨어의 국산 점유율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국내 기업들이 기술 개발에는 성공했으나, 보수적인 글로벌 선주들의 벽에 부딪혀 상용화에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에만 머물러 있는 특허 전략도 수정이 시급하다. 선진국 기업들이 전 세계에 촘촘한 특허망을 쳐놓고 로열티를 챙기는 동안, 우리 기업들은 국내 출원에만 집중해 글로벌 분쟁에서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두뇌와 설계가 승부처… 멈추면 추격당한다"
결국 K-조선과 방산의 미래는 '쇠를 깎는 기술'이 아니라 '두뇌와 설계'에 달려 있다. 정부 주도의 폐쇄적 생태계에서 성장한 방산의 성공 DNA를 어떻게 개방형 글로벌 시장인 민수 조선으로 이식하느냐가 관건이다.
방산 관계자는 "지금의 국산화율 80%는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라며 "나머지 20%의 원천기술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거대 자본을 앞세운 중국 등의 추격에 언제든 뒷덜미를 잡힐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바다 위(수상함)와 바다 아래(잠수함)를 아우르는 'K-해양 방산'의 질주는 시작됐다. 이제 대한민국 조선업의 다음 이정표는 단순한 '건조 강국'을 넘어, 전 세계 바다의 표준을 설계하는 '기술 패권국'으로 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