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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아리랑] <33> 전란 속 청춘의 내면 풍경 ‘봄날은 간다’

[대중가요의 아리랑] <33> 전란 속 청춘의 내면 풍경 ‘봄날은 간다’

기사승인 2023. 03. 1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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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객원논설위원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이보다 더 화사하고 이 보다 더 슬픈 봄날의 역설은 없다.

오래전 이름 있는 문학잡지가 유명 시인 100명에게 '가장 좋아하는 옛노래'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봄날은 간다'가 단연 1위로 뽑혔다고 한다. 특히 시인들은 '봄날은 간다'의 노랫말이 가슴에 와닿는다고 했다. 이 노래가 비록 대중가요이지만 문학적인 품격과 예술적 자존감을 잃지 않으면서 즐길만한 가사와 가락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노래는 그렇게 한국인들의 최고 애창곡이 되었다.

노랫말은 '연분홍 치마' '산제비' '성황당' '청노새' 등 정감 어린 옛 단어들을 매개로 삼아 '휘날리더라' '흘러가더라' 등의 회상형 종결어미를 구사하며 잠자고 있던 한국인의 정한을 소환했다. 감성이 남다른 시인들이 이 노래에 심취하는 까닭일 것이다. 가슴 깊이 스며드는 애절하고도 체념적인 선율은 또 어떠한가. '봄날은 간다'는 세파에 지친 대중의 심사를 정화시키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봄날은 간다'는 전란에 휩쓸린 사람들의 처연한 내면 풍경을 머금고 있다. 전쟁이 초래한 청춘의 소멸을 속절없이 스러져가는 봄날의 풍경과 대비시킨 짙은 서정이 압권이다. 수많은 젊은 목숨들이 동족상잔의 포연 속으로 봄날의 아침이슬처럼 사라져가지 않았던가. 그렇게 슬퍼서 그렇게 아파서 더 애틋한 노래이다. '봄날은 간다'에는 한국인이 공감하는 한(恨)의 정조가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이 노래는 40대 중반은 넘어서야 제대로 부를 수 있다고 한다. 단지 흔한 슬픔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저 초연한 관조도 아닌 노래를 제대로 표현하려면 그만한 연륜이 필요할 것이다. 백설희에 이은 나훈아, 조용필, 심수봉, 이선희, 한영애, 최백호, 장사익 등의 가수들이 중늙은 나이에 리메이크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노래는 시와 연극, 영화와 악극으로도 계속 만들어져 그 예술적 가치를 입증했다.

노래의 탄생과 관련한 일화도 있다. 작사가 손로원의 부산 피란시절이었다. 막걸리 몇 잔에 거나하게 취해 용두산 기슭 판자집으로 돌아왔는데 불이 나서 잿더미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애지중지 벽에 걸어두었던 어머니의 사진도 사라져버렸다. 방랑생활을 하느라 임종도 보지 못했던 홀어머니였다. 시집올 때 입었던 연분홍 치마 저고리를 입고 수줍게 웃고 있던 모습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상실감이 손로원에게 '봄날은 간다'라는 회한의 노랫말을 쓰게 했다. 어머니의 열아홉 처녀시절과 가는 봄을 비유한 것이다. 전란의 후유증과 가슴 시린 사연을 담은 가사에 작곡가 박시춘이 선율을 붙이고 백설희가 부른 절창이 바로 '봄날은 간다'이다. 전란이 초래한 청춘의 사랑과 낭만의 소진을 탄식한 이 노래는 전쟁의 막바지인 1953년 대구에서 발표되었다.

김소월은 '실버들 천만사 늘여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라고 읊었다. 어느 시인은 '손님 없는 노래방에서 술에 취한 봄날이 간다'고 했다. 봄이란 그렇게 문득 왔다가 속절없이 가는 것인가. 화려한 봄날일수록 담배 연기처럼 허망하게 스러지는 것인가. 봄이란 계절이 그렇듯 우리네 삶 또한 그럴 것이다. 참으로 덧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봄날은 간다'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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