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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베트남전 국군 민간인 학살 인정…韓정부 배상책임”

법원 “베트남전 국군 민간인 학살 인정…韓정부 배상책임”

기사승인 2023. 02. 0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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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니 학살 사건'서 한국군에 총상 입고 가족 잃어 소 제기
법원 "사실 인정…정부, 위자료 3000만원 지급해야"
소통관 들어서는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 응우옌 티 탄씨(오른쪽))와 목격자 응우옌 득쩌이씨(오른쪽두번째)가 한국 정부의 책임 인정과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2022년 8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의혹에 대해 우리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법원 판결이 나왔다.

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부장판사 박진수)은 이날 베트남인 응우옌 티탄(63)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우선 "베트남 국민이 대한민국 법원에 낸 소송이지만 내·외국인에게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보장하는 등을 고려해 한국의 국가배상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피해 내용·정도와 50년 이상 배상이 지연된 점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4000만원으로 정했다. 하지만 원고가 3000만100원의 지급을 구하고 있어 "해당 금액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한국 정부가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베트남에서 보내는 미소<YONHAP NO-2791>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씨가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한민국 상대 민사소송 1심 선고 공판에서 일부 승소한 뒤 화상 연결을 통해 변호인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
선고 직후 응우옌씨는 베트남에서 화상 연결을 통해 "소식을 듣고 뛸 듯이 기뻤다. 희생된 74명의 영혼에게 위로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도와준 한국의 변호사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응우옌씨의 대리인단은 "이번 선고는 대한민국의 공식 기구가 최초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을 인정한 것"이라며 "지금까지는 개인 일탈 행위에 따른 처벌만 인정됐지만, 이날 군인이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민간인을 집단으로 학살했다는 게 인정된 것이라 기존 형사 판결과는 의미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퐁니 학살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은 1968년 2월 베트남 중부 꽝남성에 위치한 퐁니 마을에서 한국군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군인들이 마을 주민들을 한 곳에 강제로 모이게 한 뒤 총으로 사살한 일이다. 당시 민간인 74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알려졌다.

당시 8살이었던 응우옌씨는 한국군에 의해 복부에 총상을 입고, 가족들도 죽거나 다쳤다. 이후 2015년부터 한국에서 피해사실을 알리다 2020년 4월 한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학살 사실 인정"…사법부 첫 판단
이날 재판부는 "피고 대한민국의 명백한 불법행위가 인정된다"며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의혹을 공식적으로 처음 인정했다.

앞서 재판과정에서 응우옌 티탄씨의 삼촌 등 관련자들이 직접 한국에 와 학살 목격담을 증언한 바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 측은 "피해자·목격자의 진술만으로 가해자가 한국군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거나 "진술이 일관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와 증언 등 관련 사실에 따라 1968년 6월 12일 대한민국 해병 군인들이 원고 가족들을 총으로 위협해 집에서 나오게 한 뒤, 총격을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실 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수십년의 시간이 지나 소멸시효가 만료됐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고가 소송을 제기하기까지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등 장애 사유가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해, 시효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의 인정 결정에는 관련 자료들이 많은 것이 상당히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보통 국가에 의한 폭력 등 사건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피해자들이 용기 내는 경우가 많아 증거가 많지 않고 증언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퐁니 학살 사건은 1968년 발생 직후 미군이 현장에 진입해 진상조사를 하는 등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는 미군의 한 병사들이 한국군 부대가 마을로 진입해 습격하는 모습을 목격한 뒤, 마을로 들어가 부상자 치료 및 사진 촬영을 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우리 정부도 사건 발생 1년 후 별도 조사를 벌여 보고서를 작성해 국가정보원(국정원)이 보관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재판과정에서 응우옌씨 측이 국정원에 자료를 공개하라고 했지만 거부됐었다. 하지만 한 시민단체 소속 변호사가 정보공개거부처분 무효 확인 소송을 내 대법원에서 확정받았다. 이에 2021년 3월 국정원은 해당 보고서를 비롯해 관련된 모든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군의 학살 의혹은 본안 사건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고자이 마을 학살 △영산사 승려 학살 등이다. 이 사건들은 퐁니 학살 사건과 달리 구체적인 증거나 문건 없이 피해자들의 증언만 전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판결로 향후 다른 피해자들의 소송 제기가 잇따를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추가 증거 입수 없이는 승소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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