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자녀 가정에 1억원…직원들과 막걸리잔도
화학 외길 50년, 日 합작사 복귀…오랜 신뢰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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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화학업계에 첫발을 디딘 박 회장은 올해로 입사 50년을 맞았다. 부친인 고(故)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에게 배운 바둑은 평생의 취미가 됐고, 직원들과 막걸리를 나누며 어울리기도 했다. 과묵한 성격이지만 승부에서는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형제간 갈등을 거쳐 독자경영의 길을 걸었고, 한 차례 물러난 뒤 일본 합작사 대표로 돌아왔다. 일상의 소탈함과 경영에서의 강단이 함께한 인생이다.
◇아버지에게 배운 바둑…짜장면 한 그릇의 소동
1948년 태어난 박 회장은 박인천 창업주의 넷째 아들이다.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에서 통계학을 공부한 뒤 1976년 금호석유화학의 전신인 한국합성고무에 입사했다. 주변에서는 차분한 말투와 고집, 검소한 습관까지 부친을 닮았다고 말한다.
아버지와의 추억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둑이다. 박 창업주는 막내아들을 '막둥아'라고 부르며 무릎에 앉혀 바둑 교본을 펼쳤다고 한다. 1977년에는 부모와 두 달가량 미국과 유럽 등을 여행했고, 스위스 융프라우에서 함께 찍은 사진도 남아 있다. 박 회장은 훗날 결혼해 분가한 뒤 부친을 자주 찾아뵙지 못한 일을 아쉬워했다. 아버지가 불러도 어렵게 느껴져 선뜻 찾아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때 배운 바둑은 직장생활에서도 이어졌다. 주5일 근무제가 없던 시절 토요일 업무를 마치면 지인들을 사무실로 불러 대국을 즐겼다. 끼니도 짜장면으로 해결했다. 한번은 배달원 출입이 제한된 사옥에서 보안요원과 비서실 직원들이 음식 주문자를 찾아 헤맸다. 회장이 짜장면을 시켰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탓이다. 사무실에서 벌어진 사소한 해프닝이지만, 지인들과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시간을 보내던 그의 모습은 공식 석상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상이었다.
바둑은 경영 메시지에도 등장했다. 박 회장은 2015년 신년사에서 드라마 '미생'을 인용하며 "어떤 의미와 자세로 내 인생의 바둑돌을 놓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며 완생하자"고 당부했다. 승부욕은 골프에서도 드러났다. 2004년 생애 첫 홀인원을 기록했고, 비가 쏟아져 일행이 라운드를 그만두려 할 때에도 18홀을 마치려 했다는 일화가 있다. 결국 캐디가 어려움을 호소하자 경기를 접었다. 평소 과묵한 모습과는 다른 면모였다.
◇일면식 없는 가족에 1억원 후원…직원들과는 막걸리 한잔
2024년 박 회장은 서울 중구의 1995년생 동갑내기 부부가 일곱째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일곱 자녀를 키운다는 사연이었다. 개인적인 인연은 없었지만 1억원의 후원을 결정했고, 지원금은 가족의 주거비 마련에 보태졌다. 2023년에도 경기 의왕시 아홉 자녀 가정과 신장 이식 및 암 수술을 겪은 경기 화성시 세 자녀 가정에 각각 5000만원을 지원했다. 두 해 동안 세 가정에 전달한 금액만 2억원이다.
국경을 넘은 후원도 있었다. 2012년 캄보디아의 17세 소녀 꾼띠는 뇌종양과 수두증을 앓았지만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했다. 현지에서 의료봉사 중이던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이 사연을 알리자 박 회장은 치료비 2000만원 전액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금호석유화학 측에 따르면 그는 후원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렸다. 이름을 알리는 일보다 소녀가 제때 치료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는 설명이다. 깨진 책장도 버리지 못하게 하던 사람이지만 돈을 꼭 써야 할 곳에는 다른 기준을 적용한 셈이다.
직원들과도 격의 없이 어울렸다고 한다. 울산과 여수 공장에 가면 노조 간부들과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는 직원들과 막걸리잔을 기울였다. 2013년에는 금호폴리켐 임직원들과 청계산에 올랐으며, 채권단 자율협약을 졸업한 뒤에는 생산 현장을 찾아 노고를 격려했다. 격식을 차린 회의실보다 식사 자리와 산행에서 직원들과 가까워지는 방식이었다.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에는 11개 계열사 직원 2221명에게 1인당 100만원씩 특별 격려금을 지급했다. 신입사원과 비정규직도 같은 금액을 받았고 임원은 제외됐다. 능력만큼 오래 쌓은 신뢰가 중요하다는 그의 인사관과도 닿아 있다. 박 회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함께 일해온 사람들과 오래 일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물러났다가 돌아온 자리…50년 화학 인연의 힘
한번 맺은 인연을 중시하는 태도는 일본 기업들과의 사업에서도 엿보인다. 금호석유화학은 JSR과 미쓰이화학 등과 합작사업을 이어왔고, 박 회장은 수십 년간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데 역할을 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물론 경영 인생에는 그늘도 있다. 형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대우건설·대한통운 인수 등을 놓고 갈등을 겪었고, 금호석유화학은 독자경영 체제를 갖췄다. 박 회장은 배임 등 혐의로 2018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확정받았다. 2023년 5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같은 해 8월 특별사면으로 복권됐다.
복귀한 곳은 한일 합작사 금호미쓰이화학이었다. 박 회장은 2023년 10월 공동대표이사로 돌아왔다. 당시에는 폴리우레탄 원료인 MDI 생산능력을 20만톤 늘리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2021년 4월 그가 대표이사로서 승인했던 투자가 진행되는 시점이었다. 금호석유화학 측은 그가 복귀 뒤 공사 상황을 챙기고 일본 파트너와 소통을 조율했다고 설명했다.
2025년 4월 증설 공장 준공으로 생산능력은 연간 41만톤에서 61만톤으로 늘었다. 같은 해 12월 주주총회에서는 1400억원 규모의 추가 투자안이 승인됐다. 연간 71만톤 생산체제를 갖춰 올해 말 상업생산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박 회장이 첫 투자 결정부터 준공, 추가 증설까지 사업의 주요 고비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복귀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금호석유화학 측은 오랜 사업 경험과 일본 파트너와의 신뢰 관계가 박 회장의 복귀와 이후 경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아들 박준경 금호석유화학 총괄사장 등 다음 세대가 전면에 나선 상황에서, 자신은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파트너와의 연결고리를 맡고 있는 셈이다.
아버지 무릎에서 처음 바둑돌을 잡았던 소년은 어느덧 화학업계에서 반세기를 보냈다. 작은 물건 하나를 아끼는 검소함부터 낯선 이웃에게 선뜻 손을 내미는 모습까지, 그 시간에는 박 회장의 다양한 면모가 담겨 있다. 이제 그가 쌓아온 경험과 인연이 다음 세대에 어떤 자산으로 남을지가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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