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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청년의 분노와 문명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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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10. 2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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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의 불만, 거리의 분노가 되다
파리를 지킨 장군, 역사와 전설 사이
문명의 책임이 대선의 심판대로
주은식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Brennt Paris oder Steht es gerade im Flammen?)" 이 말은 라스텐부르그 총통본부가 있던 볼프스산체(늑대굴)요새에서 히틀러가 참모들에게 한 명령이자 질문이었다. 그는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 후에 파리로 진격해 오자 파리를 완전히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라고 명령했다. 프랑스어로는 진행형으로 표기하여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아니면 불타고 있는 중인가?(Paris brule-t-il ou est-il en train de bruler?)"를 계속 반복해서 발령했다. "총통은 반복 지시한다. 파리를 적에게 온전한 상태로 넘겨서는 안 된다. 완전히 불태우라"고 초토화 명령을 발했다.

1944년 파리의 운명과 함께 기억되는 이 질문이 오늘 프랑스 거리를 향하고 있다. 점령군의 철수를 앞두고 도시 파괴가 우려됐던 그때와 달리, 이번 불길은 교육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시작된 시위가 사회적 항의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치솟아 올랐다. 자유와 시민정신을 자부하는 나라에서 경제와 이민 문제가 시민의 생활 터전을 위협하는 역설이 벌어진 것이다.

10월 18일 외신이 전한 최소 1800명 체포는 파리 고교생만의 숫자가 아니라 프랑스 전국 시위 집계였다. 학생들의 요구에 노동조합과 생활비 상승에 반발하는 시민들이 합류했고, 일부 집단은 유서 깊은 건물의 방화와 약탈로 평화적 행진을 뒤덮었다.

출발점은 교실이었다. 9월 하순부터 학생들은 교사 부족과 결원 방치, 과중한 시간표, 낡은 시설에 항의했다. 책걸상이 부족하고 화장실에 문과 비누조차 없다는 호소도 나왔다. 교사와 학부모가 참여하면서 운동은 커졌고, 경찰 대응으로 청소년들이 크게 다쳤다는 보도가 분노를 증폭시켰다. 투표권이 없는 학생들에게 거리의 시위는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 통로가 됐다.

그 밑에는 경제적 압박이 깔려 있다. 호황이 갈등을 없애지는 않지만 성장의 과실은 불만을 완충한다. 반대로 저성장과 물가 상승, 재정난이 겹치면 교육·복지 예산은 누구에게 무엇을 먼저 배분할 것인가의 싸움이 된다. 프랑스의 약한 성장과 불어나는 국가부채는 정부의 대응 여력까지 좁히고 있다. 교실의 불편이 공화국의 약속에 대한 불신으로 번진 배경이다.

이민과 난민의 사회통합 문제도 이 맥락에서 살펴야 한다. 수용 이후 교육·주거·고용을 뒷받침하지 못하면 취약지역의 부담과 주민 사이의 경쟁의식이 커질 수 있다. 프랑스 통계청 자료에서도 이민자 집단의 빈곤과 고용 격차가 드러난다. 그러나 이민자와 난민, 그 후손인 프랑스 시민을 한데 묶거나 이번 소요를 '난민 대량 유입의 결과'로 단정해서는 원인을 놓친다. 핵심은 출신을 넘어 기회와 공공서비스를 어떻게 보장하느냐에 있다.

1944년 8월, 연합군이 접근하자 히틀러는 파리를 온전히 넘겨주지 말라는 파괴 명령을 내렸다. 현지 독일군 사령관 디트리히 폰 콜티츠는 결국 항복했고, 도시는 전면 파괴를 면했다. 만약 주요 교량과 기념물, 역사적 건축물이 잿더미가 됐다면 오늘 우리가 아는 파리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이 극적인 역사를 널리 알린 것이 래리 콜린스와 도미니크 라피에르의 논픽션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와 1966년 르네 클레망 감독의 동명 영화다. 콜티츠는 명령에 대한 복종보다 문명에 대한 책임을 택한 장군으로 기억됐다. 1966년 그의 장례식에 프랑스 고위 장교들이 참석한 사실도 그 기억의 무게를 보여준다. 그러나 역사는 영화보다 복잡하다. 최근 연구는 콜티츠의 파괴 수단이 충분했는지, 패전 판단과 자기보존이 얼마나 작용했는지를 따진다. 레지스탕스의 봉기와 연합군의 진격, 스웨덴 외교관 라울 노르들링의 중재도 함께 평가한다. '한 장군의 양심이 홀로 파리를 구했다'는 설명에는 전후 만들어진 영웅담이 섞여 있다.

"히틀러의 배신자가 될지언정 인류 문화유산의 파괴자는 될 수 없다"는 문장 역시 확인된 직접 발언으로 보기 어렵다. 레지스탕스가 콜티츠를 체포하면서 너무 긴장하여 "당신 프랑스어 할 줄 알아?"라고 물어야 할 상황에서 "당신 독일어 할 줄 알아?"라고 물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그럼에도 이 일화가 던지는 질문은 유효하다. 명령과 책임이 충돌할 때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군인의 판단은 복종의 성실성만으로 평가될 수 없으며, 돌이킬 수 없는 파괴 앞에서는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물어야 한다.

점령군의 도시 파괴 명령과 민주사회의 시위는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지켜야 할 공동의 터전이 있다는 점에서는 만난다. 학교를 개선하겠다며 학교를 불태우고, 불평등에 항의하며 이웃의 가게를 약탈한다면 피해는 다시 학생과 서민에게 돌아간다. 문명은 에펠탑과 루브르박물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실과 상점, 버스와 도서관도 시민의 삶을 떠받치는 유산이다.

정부 역시 질서 회복만으로 사태를 끝낼 수 없다. 이 위기는 프랑스 대선으로 이어진다. 프랑스의 차기 대통령 선거는 2027년 4월 18일 1차 투표, 5월 2일 결선투표로 예정돼 있다. 두 차례 연임한 마크롱은 연속 세 번째 출마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시험대에 오른 것은 집권 진영의 정권 유지 가능성과 마크롱 정치의 유산이다.

교육과 복지를 지키지 못했다는 실망에 치안 불안까지 더해지면 집권 진영은 양쪽에서 신뢰를 잃을 수 있다. 분배와 공공서비스를 앞세운 세력, 이민 통제와 질서 회복을 내세운 세력이 그 틈을 파고들 것이다. 다만 불길이 곧 특정 진영의 승리를 뜻하지는 않는다. 유권자는 분노의 대변자와 국가를 운영할 능력을 함께 판단할 것이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오늘 타들어 가는 것은 거리의 시설물과 함께 공동체의 신뢰다. 선대가 남긴 도시를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문화를 물려주는 책임은 정부와 시민 모두에게 있다. 프랑스가 꺼야 할 불은 거리의 화염뿐 아니라 청년의 절망과 분노의 불꽃이다. 우리에게도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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