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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는 내 삶의 모체”…강인숙·강은교, 자랑스러운 경기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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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 기자

승인 : 2026. 10. 1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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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여고 개교 118주년 기념 동창의 날…문학 연구·창작으로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
1994년 제정 후 올해 33회…두 사람 포함해 지금까지 56명 수상
강인숙 영인문학관장, 문학자료 보존·대중화와 현대문학 연구에 기여
강은교 시인, 시집 15권 등 창작·저술 활동으로 한국 현대시 지평 넓혀
두 수상자 “경기는 삶과 문학의 토대”…모교와 스승·동문에 감사 전해
지난 17일 경기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개교 118주년 기념 동창의 날 행사에서 자랑스러운 경기인상을 받은 강은교 시인과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이 탁은희 선정위원장, 이숭리 경기여고 총동창회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탁은희 위원장, 강은교 시인, 강인숙 관장, 이숭리 회장. / 사진=경기여고
문학평론가 강인숙 영인문학관장과 시인 강은교 동아대 명예교수가 모교 경기여고를 빛낸 공로로 ‘자랑스러운 경기인상’을 받았다.

경기여고는 지난 17일 서울 교내 100주년기념관에서 개교 118주년 기념 동창의 날 행사를 열고 두 동문에게 상을 수여했다. 1994년 제정된 이 상은 올해 33회째를 맞았다. 두 수상자를 포함해 지금까지 모두 56명이 상을 받았다.

자랑스러운 경기인상은 인품과 덕행을 갖추고 사회 각 분야에서 탁월한 공적을 세워 모교의 이름을 빛낸 동문에게 수여한다. 모교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고 동문 간 유대와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매년 동창의 날에 시상한다.

◇ 강인숙 영인문학관장 “경기여고는 제가 혼자 설 수 있게 한 모체”

강인숙(40회) 관장은 1965년 문학평론가로 데뷔한 뒤 현대문학 연구와 교육, 저술에 힘써왔다. 자연주의·비교문학·여성문학을 아우르는 연구와 대학에서의 후학 양성에 더해, 영인문학관을 설립해 문학자료를 수집·보존하고 문학유산을 대중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

영인문학관은 문인들의 육필 원고와 애장품을 보존하고, 문인 시각전과 육필 원고전, 문학 강연 등을 열고 있다. 강 관장은 서울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대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부터 1992년까지 건국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1999년부터 건국대 명예교수, 2001년부터 영인문학관장을 맡고 있다.

강 관장은 수상 소감에서 처음에는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민망하고 망설였다고 했다. 동창회에 자주 참석하지 못했고, 사회에 크게 공헌한 일 없이 맡은 일을 해왔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다 ‘모교’라는 말을 떠올리고 마음을 가라앉혔다고 했다.

그는 “열세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인간 형성기를 학교에서 보냈다”며 “여기서 무엇을 하며 사는 게 옳은지, 사람을 존중하는 법과 절제를 배웠고 인간이 터득해야 할 많은 지식을 얻었다”고 말했다.

경기여고에 입학한 1946년은 해방 이후 학교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때였다. 국어책과 역사책도 없던 시절, 강 관장은 고향을 떠나 모든 것을 잃은 상태였고 몸도 허약했다. 아홉 살 남동생이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가 매일 극단적인 선택을 말해 학교에 결석하며 어머니를 지켜야 할 만큼 집안 형편도 절망적이었다. 위가 좋지 않아 체중 미달의 몸으로 학교생활을 이어갔다.

강 관장은 “밑바닥에 있던 저를 포도당 주사로 보살펴주신 위생 선생님이 계셨고, 정신적으로 넘어지는 아이를 붙잡아준 선생님들이 계셨다”며 “오늘까지 살아 혼자 설 수 있는 한 인간이 된 것, 그 모체가 경기여고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동문들을 향해 “오늘은 조금 멋쩍지만 어머니께 하듯 한 가지 고백하고 싶다. 여러분을 사랑했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상을 “내게 모교가 있었다는 것을 깨우쳐준 경종”이라고 표현했다. 함께 수상한 강은교 시인도 자신처럼 체중 미달의 허약한 아이였다며 “두 사람이 무사히 오늘까지 와서 여기 서게 된 것은 모교의 힘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했다. 또 교가의 ‘우리들 모여서 횃불을 드네’를 언급하며 “슬기에 주린 자를 건지고자 횃불을 드는 자랑스러운 경기인이 돼주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 강은교 시인 “경기는 제 삶의 씨알이자 문학의 토대”

강은교(52회) 동아대 국어국문학과·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는 1968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으로 문단에 나온 뒤 한국 현대시의 지평을 넓혀온 시인이자 교육자다. 시집 15권을 비롯해 시 산문집과 에세이, 동화, 문학 연구서와 번역서를 펴냈다. 작품 여러 편이 초·중·고 교과서와 외국 출판물에 실렸다. 생명과 사랑, 공존의 가치를 깊고 맑은 언어로 그려 한국 문학을 풍요롭게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강 교수는 연세대 문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 교수는 수상 소식을 들은 뒤 설렘에 원고를 쓰지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저보다 훨씬 훌륭한 동문도 많은데 큰 상을 받게 돼 부끄럽다”며 “경기라는 큰 이름 앞에서 새삼 저를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는 제 삶의 씨알이었다”며 “그 시절의 씨알들이 제 문학을 끌고 여기까지 온 셈이다. 경기가 제 문학의 토대였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고 했다. 경기여고에 다니던 2학년 때 책을 가장 많이 읽었고, 하교 후 헌책방과 서점을 돌며 책을 읽었다고 회고했다.

그때 한 서점 주인이 책을 자주 빌려 가는 자신을 기특하게 여겨 하늘색 표지의 새 책 한 권을 선물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집이었다. 시를 잘 몰랐던 강 교수는 그 책을 계기로 시를 접했고, “이 정도면 나도 충분히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강 교수는 “릴케의 시집을 받은 일이 새삼 고맙다”며 “‘내가 릴케보다 근사한 시를 쓸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쓰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어 “언제까지 시의 행진이 저를 이끌고 갈지 모르지만, 꿈꾸던 경기여고 2학년 시절을 생각하며 새벽마다 책상으로 간다”고 했다.

두 수상자는 각자의 문학 활동을 돌아보며 모교와 스승, 동문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문학을 통해 세상에 횃불을 들고 싶다는 강인숙 관장의 당부와, 경기여고를 문학의 토대로 기억하는 강은교 교수의 고백은 동창의 날에 모인 동문들에게 모교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안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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