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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물다섯의 나이에 입대해서 스무 살짜리 선임들한테 갈굼을 당하며 4.2인치 박격포의 전포에 있다가, 관측병으로 보직 변경을 받았습니다. 선임 병장이 곧 제대하는 병장인데다, 관측병은 단순히 눈으로 잘 보는 것 뿐 아니라 대대장이나 연대장, 가끔은 사단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포를 쏴야 합니다. 당연히 질문이 나오면 답변도 해야 하는데, 우리 중대에서 그럴 싸하게 '말'을 하는 사람은 저 밖에 없었기에 '일병'이 결국 관측병으로 보직 변경을 받고 OP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비룡전망대'로 명칭이 변경된 승전OP외에 제가 근무했던 ○○OP와 △△OP는 25사단, 아니 대한민국 서부전선의 최전선에서 북과 마주했습니다. 우리 OP 옆에는 미군 OP가 있었고, 미군 OP는 우리보다 훨씬 더 좋은 장비로 무장해서 24시간 전방을 탐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군은 절대로 미군 곁으로는 가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왔기 때문에 얼씬도 하지 못했지요. 당시 군 보급현황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자존심 상한 군 간부들의 따뜻한(?) 배려 때문이라 생각은 되었지만, 달빛도 없는 캄캄한 상황에서도 대낮같이 훤히 들여다보는 그들의 최첨단 방호체계가 정말 부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제초 작업마다 안절부절 못하는 인사계
가끔 임진강 지류인 이 사미천에서 수영을 하는 그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5인 1조 행동에, 사미천으로 들어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상부에서의 명령이 있기도 했지만, 언제 유실된 지뢰를 밟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병사들 스스로도 길이 아니면 다니지를 않았습니다. 가끔 인사계가 몰래 팔뚝만한 물고기를 낚시해 가는 것을 보기는 했습니다. 사람이 들어가지 않는 이 지역의 물고기는 정말 엄청나게 컸다는 기억이 나네요.
문제는 제초작업을 할 때입니다. 전방의 풀들은 정말 잘 자랍니다. 거름을 주는 것도 아닌데 우거진 잡목은 어른들의 키를 훌쩍 넘깁니다. 그래서 봄과 가을이면 전방 시야 확보를 위해 빽빽한 풀숲에 소이탄으로 불을 지릅니다. 주로 북쪽에서 먼저 소이탄으로 남풍일 때 불을 지르면, 남쪽에서도 똑같이 소이탄으로 맞불을 놓습니다. 서로 약속을 한 것은 아니겠지만, 전방시야를 확보해야 하는 건, 남이나 북이나 마찬가지라서 일종의 '암묵적 군사작전'을 양측이 함께 진행하는 셈입니다.
그때마다 전방에 묻어놓은 지뢰는 이곳저곳에서 펑펑 터졌습니다. 그 거센 불길과 불길이 서로 맞부딪히면 신기하게도 불이 꺼집니다. 그러다 가끔은 불티가 그 넓은 임진강을 넘어 날아오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면 5분대기조 비상이 걸립니다. 어떻게든 불을 꺼야만합니다. 하지만 이럴 때도 절대 '지뢰위험' 푯말이 붙은 곳은 들어가지 않습니다.
벙커주변 제초작업을 할 때, 인사계(행정보급관) 상사는 핏대를 세워 소리를 지릅니다. "절대로 우거진 수풀로 들어가지 마라! 군에서 죽음은 개죽음이다" DMZ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북한군도 아니고, 갑자기 튀어나오는 멧돼지도 아니고, 가끔 잡아먹던 뱀도 아니고, 지뢰입니다. 비록 '지뢰지도'가 있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 병사들에게는 그런 지도는 손에 쥐어지지도 않고, 무엇보다 도대체 이 지도를 신뢰하기 힘듭니다. 6.25 한반도 전쟁 이후 남과 북은 어마어마한 양의 지뢰를 묻었지만 어디다 얼마나 묻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안전한 벙커 주위에서 제초작업을 할 때도 인사계(행정보급관)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지뢰라는 무기, 그리고 한반도 평화
지뢰라는 무기는 참 신기합니다. 보통 무기는 발사하는 주체와 피해를 입는 객체는 시간적, 공간적 동시성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지뢰는 설치된 후 수십 년이 지나서도 작동하기 때문에 비(非)시간적, 비(非)공간적인 무기입니다. 한반도는 '분단'이라는 무기가 수십 년 전에 겨누어 졌고, 한반도만 '분단'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사우스 코리아와 노스 코리아로 나뉘어졌습니다.
보통 무기는 적이 손에 들고 있을 때, 공포입니다. 그러나 지뢰는 눈에 보이지 않을 때, 그 본질적인 기능인 공포를 유발합니다. 평소에 한반도는 '분단'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다가, 동해에 미사일을 쐈느니, 미국이 평양을 폭격한다느니 하는 소식을 듣고서야 '분단'의 공포를 느낍니다. 지뢰와 닮았습니다.
보통 무기는 사람의 손을 떠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표적과 발사 시점을 정합니다. 사격장에서 교관의 명령에 따라 격발! 하면 따따당! 하고 일제히 불을 뿜습니다. 그런데 지뢰만은 사람의 손을 떠나 존재합니다. 창조주인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서 자연환경의 일부가 됩니다. 철저하게 '반(反) 인간적 인공물'인데 자연 속에 위장되어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의지와 무관하게 독자적인 파괴력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기괴한 존재론입니다. 한반도는 사람의 손에 의해 '분단'되었습니다. 미국은 딘 러스크(Dean Rusk) 중령(당시 작전국 보좌관)과 찰스 본스틸(Charles H. Bonesteel) 대령입니다. 소련은 소련군 총참모장인 알렉세이 안토노프(Aleksei Antonov) 장군이랍니다. 아! 물론 최종 책임자는 트루먼과 스탈린이죠. 그런데 한반도의 '분단'은 자신을 창조한 조물주들이 다 죽었는데도, 원래 나뉘어 존재하는 것처럼, 현재도 사람의 손을 떠나 존재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의지와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파괴력을 가집니다. '분단' 기생충들을 만들어서 '분단'으로 이익을 만드는 전쟁광들과 무기상들, 안보장사치들의 욕구를 충족시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반도인들을 남맹(南盲, 남한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북쪽 사람들을 지칭하는 신조어)과 그 반대 세력인 북맹(北盲)으로 만들어서 서로를 증오하면서 으르렁대는 '전투력'을 만들어냅니다. 사람의 손을 떠나 파괴력을 가진 지뢰처럼, 지뢰를 닮은 한반도의 '분단'은 그렇게 화력을 내뿜고 있습니다.
남과 북은 휴전선 근방에 얼마나 되는지 측정도 되지 않는 엄청난 수의 지뢰를 깔아놨습니다. 불발탄까지 포함해서 모두 제거하려면 수백 년 걸린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이 지역은 지뢰 밀집 지역입니다. 따라서 지뢰를 없앨 가능성은 한반도 통일이 되지 않는 한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됩니다. 그래서 한반도가,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가 '분단'이라는 지뢰를 제대로 밟고 터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30여 년 전, 뉘엿뉘엿 해가 질 때, 선연하게 빛나던 서부전선의 분홍빛 하늘이 생각납니다. 저는 그때 OP꼭대기에 앉아서 서툰 하모니카 솜씨로 '이등병의 편지'를 연주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지뢰는 "인간이 미래에 남기는 가장 비겁한 흔적"입니다. 오늘날의 혼란은 그 시절 아니, 그 이전 시절부터 남겨둔 흔적이 이제 발현되는 모양입니다. 지뢰폭발이 옛 기억을 소환했네요. 다치신 장병들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