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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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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4. 23. 06:22

버려진 산업의 절규...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폐단의 상징이 된 건설업 필요한 것은 선별과 지원
대한민국 산업을 살리기 위해선 방치 아닌 기준이...
최성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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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지피티를 통해 생성된 AI 이미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오 복음서 27장 46절

4월 부활절이 되면 매년 성당과 교회에서 반드시 듣는 성경 구절이다. 이들 신앙의 중심은 예수의 탄생이 아닌, 죽음과 부활에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예수의 절규는 세상을 희망으로 바꾸는 거대한 단초다. 기독교에서 12월의 성탄절보다 4월의 부활절에 더 큰 의미를 두는 이유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직전 '왜 나를 버렸냐'고 절규하는 속내가 늘 궁금했다. 전능하신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신께 매달렸어야만 했는가.

그의 외침은 종교의 언어이기 전에 인간의 언어다. 결국 예수 역시 사람의 아들임을 나타내는 순간이다. 단순히 인간의 탈을 쓴 신이 아니라, 육체와 영혼을 가진 진짜 인간...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왜 나를 버렸느냐"는 원망이 이를 입증한다.

버려졌다는 감각은 시대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앞에서 누구나 비슷하기 때문이다. 예수의 부활을 논하는 4월, 대한민국에서 가장 소외감을 느끼는 산업군은 어디일까. 바로 건설업계다. 업계의 고통은 이제 완전히 버려졌다는 절망으로 번지는 중이다.

건설업은 오랫동안 경제 발전의 선봉을 맡았다. 경기가 좋을 때는 전 산업의 성장을 이끌었고, 경기가 꺾일 때는 충격을 가장 먼저 떠안았다. 도시를 만들고, 일자리를 만드는 대표주자였다.

하지만 지금 건설업은 온갖 폐단의 시발점처럼 취급된다. 집을 지으면 투기의 상징이 되고, 사업을 미루면 경기 침체의 책임을 뒤집어쓴다. 분양가를 올리면 위정자들의 타깃이 되며, 올리지 못하면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

업계 스스로의 책임도 적지 않다. 정치와의 유착, 무리한 차입, 답 없는 수요 예측, 무리한 경쟁 등이 지금의 위기를 키운 원인이 됐다. 그러나 개별 기업이 아닌, 산업 전체의 생존 기반이 흔들리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지금은 부실 기업만 걸러지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버티던 기업들까지 함께 쓰러져간다.

가장 큰 문제는 정책의 일관성 부족이다. 건설업계가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불황 자체가 아니다. 불황은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환경은 버티기 어렵다. 공급 확대를 말하면서 금융 규제는 강화하고, 경기 부양을 말하면서 사업성은 외면한다.

특혜를 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최소한 살아남을 기업까지 함께 가라앉게 하지는 말아 달라는 신호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절대적인 부양도, 냉정한 방치도 아니다.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정리할지 분명한 기준을 세우고, 버틸 수 있는 기업이 버틸 수 있도록 금융과 정책의 통로를 마련하는 일이다. 구체적으로는 정부가 도로·철도·하천·노후 인프라 보수 같은 공공공사를 앞당겨 발주하고, 지방 중소업체가 참여할 수 있는 사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공공공사 전반에 물가연동, 설계변경 반영, 적정 공기 보장을 더 엄격히 적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인력과 안전은 '규제'가 아니라 '지원'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절규가 죽기 전 내뱉는 마지막 비명이 되기 전에 답을 줘야 한다. 그것이 건설업, 아니 우리 경제의 전부를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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