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가 10주년을 기점으로 중대한 변곡점을 맞이했다. 초기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거대 인프라 구축에 집중했던 '일대일로 1.0'은 대규모 토목 공사와 차관 제공을 통해 중국의 경제 영토를 확장해 왔다. 그러나 참여국들의 부채 위기 심화와 대규모 프로젝트의 수익성 악화, 서방의 견제가 맞물리며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이에 중국은 2023년 제3회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을 통해 양적 팽창 대신 질적 성장을 추구하는 '일대일로 2.0'을 선언했다. 이는 디지털 실크로드와 그린 실크로드를 축으로 삼아 5G 통신망, 데이터 센터, 재생 에너지 등 첨단 기술 중심의 고효율 프로젝트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특히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에서 소외된 제3세계 개발도상국 연합체인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를 집중적으로 포섭하여 다극화된 국제 질서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이 팍스 시니카(Pax Sinica)의 핵심 전략이다.
이러한 중국의 전략적 기동을 시험하는 현장은 현재 진행형인 중동 사태다.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물리적 충돌로 비화한 중동의 긴장은 중국에게 위기인 동시에 미국의 리더십 공백을 메울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이 동맹국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적 지원에 집중하며 아랍권의 반발을 사는 사이, 중국은 철저히 '평화 중재자'의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 이미 2023년 3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국교 정상화를 중재하며 외교적 성과를 거둔 중국은 이번 사태에서도 즉각적인 휴전과 '두 국가 해법'을 주장하며 아랍 국가 및 글로벌 사우스 진영 내에서 지지 기반을 넓히고 있다. 이는 일대일로 2.0이 지향하는 가치 중심의 연대 구축이라는 명분에 부합하는 행보다.
그러나 전운이 짙어지는 중동의 현실은 중국 주도 연대의 구조적 한계를 동시에 폭로하고 있다. 중국은 이란과 '25년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맺고 최대 4,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하는 등 이란을 중동 내 일대일로의 핵심 요충지로 삼았다. 하지만 중국의 전통적인 외교 원칙인 '내정 불간섭'은 위기 상황에서 파트너 국가의 돌발적인 군사 행동을 제어할 실질적인 지렛대가 없음을 의미한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이나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물류망 공격은 역설적으로 중국 경제의 생명선인 원유 도입선과 일대일로의 해상 물류축을 직접적으로 타격하고 있다. 강대국으로서의 권리는 누리되 책임은 지지 않는 외교 방식이 자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부메랑이 된 셈이다.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 보여준 중국의 자원 대응은 '글로벌 사우스와의 동반 성장'이라는 수사 이면에 숨겨진 철저한 자국 우선주의를 보여준다. 중국은 자국의 경제 안보가 흔들릴 때면 일대일로 파트너 국가들에 대해서도 냉혹한 실용주의로 대응해 왔다. 대표적으로 지난 2024년을 전후해 단행된 비료 수출 통제 사례가 있다. 세계 최대 인산염 및 비료 수출국인 중국은 자국 내 물가 및 수급 안정을 명분으로 수출 빗장을 걸어 잠갔고, 이로 인해 베트남과 태국 등 동남아시아 우방국들은 농가 생산비가 급등하는 공급망 충격을 겪어야 했다. 이러한 기조는 현재의 중동발 위기 속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전운 고조로 글로벌 에너지 수급이 불안해진 상황에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중인 필리핀 등에는 자원 공급의 문턱을 높이고 친중 행보를 보이는 국가에는 선별적 혜택을 제공하는 등 경제력을 철저히 외교적 통제 수단으로 활용하는 '거래적(Transactional)'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 중동 사태를 통해 본 일대일로 2.0의 실체는 가치를 공유하는 혈맹이라기보다 지정학적 득실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이익 공동체에 가깝다. 팍스 시니카의 야망이 구체화될수록 글로벌 사우스를 둘러싼 미·중의 세 규합 경쟁은 한층 격화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자원을 무기화하는 기술적 통제는 더욱 정교해질 전망이다. 한국은 미국 주도의 가치 동맹을 견고히 유지하면서도, 철저한 자국 이익 중심으로 재편되는 다극화 체제 속에서 중동과 아세안(ASEAN) 국가들과의 독자적인 협력 채널을 다변화해야 한다. 중국의 거대 담론이 지닌 명분과 실리 사이의 간극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우리만의 유연한 경제·외교적 공간을 확보하는 전략적 기민함이 시급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