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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 행정통합 논의가 본격화될 때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말이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표현이다. 통합 청사의 위치부터 조직 개편, 행정정보시스템 통합까지 수많은 세부 과제가 쏟아지면서 논의가 복잡해지고, 결국 동력을 잃는 장면은 과거 통합 시도의 공통된 결말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흐름은 다르다. 이 디테일의 늪을 건너기 위해 '선(先) 통합 결단'이라는 역발상이 힘을 얻고 있다.
과거 부산·울산·경남이나 대구·경북 사례에서도 쟁점은 늘 디테일에 집중됐다. 통합 이후 단계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사안까지 사전에 모두 합의해야 한다는 부담이 커지면서, 통합 자체보다 조건 협상이 앞서는 구조가 굳어졌다. 논의가 길어질수록 정치적 부담은 커졌고, 결단은 뒤로 밀렸다.
대표적인 사례가 행정정보시스템 통합 문제다. 주민등록, 지방세, 복지, 안전 등 광역단체가 운영하는 행정정보시스템은 60여 종에 이르지만, 이는 통합이라는 법적·행정적 지위가 확정돼야 본격적인 설계가 가능하다. 배를 띄우기로 결정해야 엔진을 맞출 수 있는 구조임에도, 완성된 설계도가 없다는 점이 논의 중단의 명분으로 작동해 온 셈이다.
이번 논의가 과거와 다른 점으로는 중앙정부가 제시한 유인책이 꼽힌다. 과거 통합 논의가 지역 내부의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나눌지를 둘러싼 갈등으로 이어졌다면, 지금은 외부에서 대규모 재정과 권한이 유입되는 구도가 형성됐다. 정부가 약속한 최대 20조원 규모의 재정 지원과 산업 배치 권한은 세부적인 손익 계산보다 통합 여부 자체를 먼저 판단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간 요인도 통합 논의를 압박하고 있다. 중앙정부 지원 구상과 2026년 지방선거 일정이 맞물리면서, 논의를 더 이상 미루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전처럼 논의만 이어질 경우 동력이 급격히 약화될 수 있다는 판단이 지자체 전반에 공유되고 있다.
권선필 목원대 교수는 "최근 행정통합 논의는 중앙정부 지원과 지방선거 일정이 겹치면서 일정상 더 미루기 어려운 국면으로 들어온 측면이 있다"며 "통합 시점을 놓칠 경우 논의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디테일을 통합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 통합 이후 단계적으로 풀어야 할 조정 과제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통합의 큰 틀과 정치적 결단을 먼저 확정한 뒤, 행정·재정·조직 문제는 출범 이후 시스템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이다.
김순은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는 "행정통합 논의가 반복적으로 디테일에서 멈춰 섰던 것은 준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통합 이전에 모든 이해관계를 정리하려 했던 접근 방식 때문"이라며 "통합을 하나의 완결된 결과가 아니라 출발점으로 보고 이후 조정 과정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