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액 5배…징벌적 배상 책임
기준 모호…권력의 자의적 판단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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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상한 제도는 권력의 속성에 대한 완벽한 이해에서 출발했다. 가장 힘센 사람이 기록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순간, 기록은 '진실'이 아니라 '찬양'과 '정당성 선전'의 도구로 전락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조선은 판단의 주체를 의도적으로 왕에게서 떼어냈다.
최근 정부·여당은 '허위'를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고의로 허위·조작 정보를 유통한 언론 등에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은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은 '허위·조작 정보'라는 개념을 전제로 한다.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의도' '부당한 이익을 얻을 목적' 등의 조건을 달았지만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포괄적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모호한 기준은 결국 자의적 해석으로 이어진다. 같은 행위라도, 누가 판단하느냐에 따라 허위와 조작으로 규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판단 권한은 권력자의 손에 쥐어지기 마련이다. 언론계와 시민사회가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대기업 등 공적 영향력이 큰 주체를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권한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요구한 이유다. 여당은 이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압도적 자원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비판자를 상대로 막대한 배상 소송을 언제든 꺼내 들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권력은 본능에 따라 가장 불편한 말을 먼저 겨냥한다. 검열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예단은 위험하지만 이를 감시·견제할 수단이 전무하다면 우려는 현실이 될 수 있다. 권력이 '징벌'을 경고하면 사회엔 공포가 퍼진다. 처벌이 내려질 수 있다는 신호만으로도 말과 기록은 움츠러든다. 점점 권력의 눈높이에 맞춰진다. 사관에게 그런 경고를 던졌다면 조선의 역사는 어떻게 남았을까. 역사가 아니라 권력이 허락한 이야기만 남았을 것이다.
600년 전 왕조 시대에도 권력은 판단의 주체가 아니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이 옳고 그름까지 재단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우리는 왜 사초를 왕에게서 숨겼는지 다시 떠올려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허위와 왜곡을 때려잡는 법이 아니라, 판단의 권한을 내려놓는 용기다. 입법권과 행정권을 동시에 거느린 '거대 여당'이 그 권한을 움켜쥐고 놓지 않는 한, 이 법은 언제든 '마음에 안 들면 처벌하겠다'는 선언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권력이 판단의 자리에 서는 순간, 사회는 사초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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