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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역사 ‘왕실 온양온천’ 겨울철 휴식·재충전 최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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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이신학 기자

승인 : 2025. 12. 08. 09:18

왕실 온양온천 신정비
조선시대 임금이 행차해 머문 온양행궁자리에 들어선 온양관광호텔에는 성종이 세운 '신정비(神井碑)와 '장헌세자(사도세자)를 기념하는 '영괴대(靈槐臺)'가 위치해 있다. /아산시
'불의 용이 땅 밑으로 깊숙이 굴을 파니 따뜻하고 맑은 물이 솟아난다. 이 물이 만백성을 구제하고 임금을 온화하게 하니 신비롭고 신령스럽다'

1464년 세조가 휴양차 온양행궁에 머물렀을 때 따라온 관료 이숙함과 임원준이 온양온천의 신묘함에 매료돼 그 감동을 읊은 시가 '온양팔영'에 기록돼 있다.

8일 아산시에 따르면 대한민국 중심부에 위치해 접근성이 뛰어난 충남 아산시가 겨울철 힐링 여행지로서 따듯한 치유를 선사하고 있다.

'2025~2026 아산 방문의 해'를 맞이한 2000년 역사를 지닌 국내 최고(最古) 온천도시로서 휴식과 재충전을 위한 최적의 여행지로 꼽히고 있다.

백제 온조왕 36년(18) 탕정성(湯井城)을 축조한 것으로 첫 기록된 온양온천(溫陽溫泉)은 아산시 3대 온천은 물론,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이다.

끓는 물이 나오는 우물이란 뜻의 탕정은 온천을 의미하는 것으로 탕정성의 현재 위치는 아산시 중심에서 동남쪽 2㎞ 떨어진 읍내동산성 일대로 추정된다.

백제 사비기 당시 이 지역은 탕정군(湯井郡)으로 편제됐으며, 이는 오늘날의 온양온천이 역사 속에서 처음 등장해 지명화된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온양온천은 신비로운 치유력으로 질병치료에 효과가 높다고 알려져 왕실온천으로 이용됐다.

삼국사기에는 '통일신라 성덕왕 11년(712) 4월, 왕이 온수(溫水)에 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왕이 온천을 목적으로 온양을 찾은 가장 이른 사례로 보인다.

세종대왕 역시 눈병 치료를 위해 이곳을 자주 찾았으며, 이후 현종·숙종·영조·정조에 이르기까지 여러 임금이 휴양 또는 치료를 위해 머물며 온천욕을 하고 정무도 보던 임시 궁궐 온양행궁을 조성했다.

온양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지명으로 불렸다. 탕정군 이후 온정(溫井), 고려 시대에는 온수군(溫水郡), 조선 시대에는 온창(溫昌)·온천(溫泉) 등으로 불리다가, 1442년 세종대왕이 온양(溫陽)군으로 개칭한 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조선 7대 임금 세조는 1458년 온양에서 목욕한 뒤 이곳을 '신정(神井)'이라 명명했고, 성종이 '신정비(神井碑)'를 세웠다.

실제로 온양온천의 온천수는 57℃ 내외의 100% 천연알칼리수로 지금까지 국내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고 있다. 나트륨 함량이 높고 피부와 관절, 혈액순환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왕실이 애용하던 온양온천을 상업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온천 전문가였던 일본인들은 온양온천의 치유력과 '왕실 전문'이라는 품격을 높이 평가해 근대적 시설을 확장·운영했다.

이 과정에서 온양온천은 도심 곳곳에서 누구나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생활형 온천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온양온천은 다양한 시설을 갖춘 복합 휴양 공간으로 발전해 따뜻하고 효능 높은 온천수를 즐길 수 있다. 숙박형 여행객뿐 아니라 당일 방문객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역사와 문화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것 또한 온양온천의 장점이다. 인근에 위치한 온양민속박물관은 전통 생활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온양향교, 현충사, 외암민속마을 등도 가까워 전통문화 탐방 코스로 연계하기 좋다.
이신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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