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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감정의 눈, 붓 끝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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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5. 10. 16. 16:28

첫 개인전 여는 감정학자 이동천
17~26일 명동 갤러리1898서 '천상운집(千祥雲集)'전
'진품·위작 가려낸 안목'으로 독자적 서체 창조
52점 작품에 50년 필법 연구 집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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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이자 우리나라 미술품 감정학의 선구자인 이정(二井) 이동천이 16일 서울 명동 갤러리1898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들 앞에 섰다. /사진=박성일 기자
천경자 '미인도' 위작 논란, 1000원권 지폐 '계상정거도' 진위 의혹. 우리 미술계를 뜨겁게 달궜던 이슈의 중심에 섰던 감정학자 이정(二井) 이동천(60)이 처음으로 개인전을 연다. 30년간 진품과 위작을 가려온 그가 이번엔 창작가로 변신, 자신만의 서체를 세상에 내놓는다.

17일 서울 명동 갤러리1898에서 개막하는 '천상운집(千祥雲集)'전에는 이 작가가 50년에 걸쳐 연구한 왕희지 등 거장들의 필법을 바탕으로 독자적으로 창조한 서예 작품 52점이 전시된다. '좋은 기운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뜻의 전시 제목처럼 그는 "매 작품을 쓸 때 기도를 하고 영혼과 그간의 지식을 쏟아부었다"고 말했다.

전시 개막에서 앞서 16일 갤러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작가는 "미술품 감정을 배우고 나서 제 글씨의 큰 변화는 필법에 대한 이해도가 감정을 통해 확신으로 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우리나라 궁체 서예의 가치를 재조명했다. 그는 "궁녀들이 써서 시시하다고 생각하지만, 왕희지 이전부터 지속돼 온 대가들의 필법을 똑같이 쓴 것"이라며 "여자들이 썼다고 무시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무명 궁녀들의 글씨에 엄청난 내공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감정가로서 경험이 서예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그는 "추사 김정희 글씨를 직접 써보고 그 필법을 완전히 이해한 상태에서 진위를 감정했다"며 "감정을 하지 않았다면 붓이 어떻게 회전되어 이런 획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기존 서예가들과 달리 대가들의 비법을 오늘날에 부활시킨 것으로, 이는 그가 노련한 감정가이기에 가능한 발견이었다.

이동천 작가
이동천 작가. /사진=박성일 기자
이 작가의 서예 이력은 화려하다. 1975년 전주에서 서예를 시작해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미 전북 예총회관에 작품이 걸려 화제를 모았다. "초등학교 5~6학년 때는 통행금지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서예학원에서 청소까지 마치고 집으로 뛰어갔다"는 회고에서 그의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이 작가는 1981년 도쿄국제미술협회에서 장려상을 받았고, 1999년 중국 중앙미술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서화 감정계의 태두 양런카이의 수제자이기도 하다. 그는 "은사님이 제 글씨를 보고 저를 받아주셨다. 첫날 만났을 때 '우연이 필연이 된다'고 하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필연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작가는 2001년 명지대에 국내 최초로 예술품 감정학과를 개설하고, 2004년부터 2019년까지 서울대 대학원에서 작품감정론을 강의했다. 현재 중국 라오닝성박물관 해외특빙연구원이자 문화재감정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이 작가는 "진짜 예술은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공감해주고 그들에게 생명력을 주는 것"이라고 이 작가는 정의했다. 그는 "예술은 단순하게 누구를 현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축복해 주는 것"이라며 "예술이 본연의 자리를 찾으려면 예술가가 자신을 작품에 갈아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천 작가
이동천 작가. /사진=박성일 기자
이 작가는 "경력에 비해 전시회를 너무 늦게 했다"이라며 "무명으로 사라진 궁녀들은 엄청난 내공을 보여줬지만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 그에 비하면 나는 행운아다. 보여줄 수 있고 전시할 수 있으니"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번 전시에서는 '대도무문(大道無門·깨달음의 길은 문이 없어 모두에게 열려 있다)', '교룡득운우(蛟龍得雲雨·영웅이 기회를 만난다)', '무아무심(無我無心·억지 없이 자연스럽게 깨어 있음)'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26일까지.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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