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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만 칼럼] AI가 바꾸는 노동시장 불평등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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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0. 14. 17:44

홍순만
홍순만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장
◇AI와 조직 구성원 간 성과 격차

산업혁명 이래 기술 발전은 고학력, 고숙련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를 '기술진보의 숙련 편향' 현상이라고 하는데, 새로운 기술이 숙련된 노동자의 생산성을 크게 높이는 반면 저숙련 노동은 기계로 대체되어 상대적으로 입지가 줄어드는 현상을 일컫는다. 지난 수십 년간의 IT 혁신은 주로 고숙련 노동자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한편 저숙련 노동자에게는 상대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해, 생산성 격차는 벌어져 왔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이러한 전통적인 기술 효과의 패턴을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MIT와 스탠퍼드대학 연구진이 한 고객상담센터에 생성형 AI 도구를 도입한 사례를 살펴보면, AI 도입 후 직원들의 평균 생산성이 향상되었는데, 특히 신입이나 낮은 숙련도의 상담사들에게서 생산성 향상 효과가 매우 높게 나타났고, 이미 숙련된 고성과 직원들에게는 큰 효과가 없었다.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이유는 생성형 AI가 숙련자들의 암묵지와 모범 사례를 학습해 전파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기계가 사람의 경험과 노하우를 흉내 내기 어려웠지만, 최신 AI는 방대한 데이터로부터 최고의 요령을 학습해 경험 부족한 이들에게도 숙련자들의 노하우를 실시간으로 전수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반대의 연구결과도 존재한다. 최상위 성과자들이 신기술을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때문에 조직 구성원들 간 성과 편차가 오히려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AI 활용도는 교육 수준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고학력자일수록 업무에서 AI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 두 사례를 종합해 보면, 일반적인 경우 고학력자와 고성과자들이 AI를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하는 경향으로 인하여 조직 구성원들 간 성과 편차는 크게 증가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이 적극적으로 신기술을 도입하며 AI로 하여금 고성과자들의 암묵지와 모범 사례를 학습하여 조직 전체 구성원들에게 공유하도록 할 경우, 조직 내 성과 편차는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세대별 AI 영향의 역설적 구조

한편, AI의 파급 효과는 세대에 따라 역설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노동시장 데이터를 보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쪽은 젊은 신입 구직자들이며, 상대적으로 혜택을 보는 쪽은 기존에 자리 잡은 기성세대 노동자들인 것으로 드러난다. 스탠퍼드대학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AI 기술에 많이 노출된 산업에서는 최근 몇 년간 신입 일자리 비중이 감소했고, 2022년 이후 AI 활용이 활발한 업종에서 경력 초년층 고용은 감소한 반면 같은 분야의 고연차 인력 고용은 오히려 늘었다.

이러한 세대 간 명암의 대비에는 한 가지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정작 AI 기술을 가장 열광적으로 받아들이는 세대는 청년층인데, AI로 인해 가장 큰 취업 충격을 받고 있는 것도 청년 세대이기 때문이다. 2025년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18~29세의 절반 이상이 이미 일상적으로 AI를 활용하고 있으며, 특히 아이디어 구상이나 정보 검색, 업무 보조 등을 위해 AI를 사용하는 비율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크게 높았다. 이렇게 'AI 친화적 세대'인 청년층이지만, 정작 채용 시장에서는 AI 때문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경직적인 노동시장 규제정책이 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노동시장 규제가 경직적일수록 해고·재배치 비용이 커진 기업은 내부 숙련 인력 유지와 자동화 투자를 선호해 사회초년생의 신규 진입 기회를 더 축소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그 결과 AI 활용 역량이 높은 사회초년생이 오히려 채용 시장에서 외면받는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

◇결론: 균형 잡힌 AI 전환 전략의 필요성

AI 시대의 노동시장 변화는 기존의 기술진보 패턴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통적으로 고숙련 노동자에게 유리했던 기술진보와 달리, AI는 저숙련 노동자의 생산성 향상에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AI 수용도에 따른 새로운 격차가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청년층이 역설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구조적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향후 AI가 노동시장에 어떠한 파급효과를 가져오는가는 기술 자체의 특성뿐만 아니라 기업과 정부의 대응에 따라서도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기업이 AI를 조직 전체의 역량 향상 도구로 적극 활용하고, 정부가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 기회를 확대하는 정책을 마련한다면, 신기술이 노동시장에 미칠 부정적 효과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AI 기술의 혜택이 사회 전체에 고루 분배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홍순만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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