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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 여의도 국회의사당 위에서 커피 한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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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0. 13. 18:00

이경욱 실장님-웹용
이경욱 논설심의실장
호주 시드니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다. 수도 캔버라에 주(駐)호주 한국대사관이 있어 근무기간 두어 차례 그곳에 가본 적은 있지만 대사 등 관계자들을 만나고 곧바로 시드니로 돌아왔기에 호주 국회의사당을 방문한 적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휴가차 캔버라 구경을 갔다가 국회의사당을 가보자는 일행의 제의에 따라 국회의사당을 찾아 나섰다.

서울 여의도에 우뚝 솟은 우리 국회의사당과 워싱턴D.C. 백악관 근처 미국 국회의사당 모습만 봐왔기에 호주 국회의사당도 큼지막한 외관을 하고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국회의사당은 찾아볼 수 없었다. 행인들에게 물어보면 손으로 위치를 가리켰다. 둘러봤지만 높은 건물은 찾기 어려웠다. 주소를 들고 무작정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야트막한 산을 올랐다. 산 정상에는 높다란 깃대에 걸린 호주 연방정부 국기가 휘날리고 있었을 뿐, 국회의사당 같은 건물은 찾을 수 없었다. 국회의사당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누군가 손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야산 곳곳에 난 유리 창문 사이로 건물 안 모습이 들어왔다. 그리로 내려갔다. 마침내 야산에 묻힌 국회의사당을 만날 수 있었다.

"국민은 국회의원보다 높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섬긴다는 마음을 잊지 않도록 국회의사당을 국민이 밟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직원 설명에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야산에 파묻혀 있는 국회의사당. 국민이 아무 때나 가서 밟아볼 수 있는 국회의사당.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서울 여의도 우리 국회의사당은 어떤가. 본관은 접근조차 어렵다. 도로나 지하철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다. 무엇보다도 출입을 하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신분증을 맡기고 검색을 거쳐야 한다. 물론 국회의원과 보좌진, 직원들은 예외다. 우리 국회의사당은 주인인 국민보다는 국회의원과 직원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진다면 지나칠까.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이지만, 선출되고 나면 얼굴을 보기 쉽지 않은 게 우리 정치의 현실 아닌가. 국회의원을 만날라치면 이 보좌관, 저 보좌관을 거치고 거쳐야 한다. 통화조차 쉽지 않다. 선거 때에는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리지만, 당선 후에는 10명에 가까운 보좌진에 둘러싸여 국민 접근을 어렵게 한다.

이런 국회의사당을 볼 때마다 의사당 꼭대기 돔 옆 공간에 카페를 만들고 전망대를 설치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호주 국회의사당을 보고 난 이후 이런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전망대 전용 승강기를 설치해 국회의사당 내부를 통하지 않고 곧바로 돔 옆 공간으로 올라가 서해 낙조를 바라보고 흐르는 한강물에 잠시 생각을 맡겨 보면 어떨까 싶다. 무엇보다도 국민이 원하는 때 상시로 국회의사당 꼭대기에 올라가게 되면 자신이 뽑은 국회의원을 한층 편안하고 가까운 존재로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국회의원은 의사당 출근 때마다 의사당 위에서 내려다보는 국민을 올려 보면서 한층 겸손하고 겸허한 마음을 갖추지는 않을까.

우리 국회의원들은 한 해 수억원에 달하는 세비를 받는다. 많은 보좌진도 두고 있다. 북유럽 국회의원들과는 사뭇 다르다. 북유럽 국회의원들은 이른바 '명예직'으로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다수의 국회의원이 보좌진 1명으로부터 공동으로 업무보조를 받는다고 한다. 의원실을 집 삼아 하루 종일 의정활동에 관한 자료를 탐색하고 민원인을 만나는 데 최선을 다한다. 호주 국회의원도 우리나라 국회의원처럼 과분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국민을 위해 아낌없이 봉사한다는 자세로 국회의원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추석 연휴를 앞두고 국회의원에게 간 명절 휴가비는 424만7940원이나 됐다. 그렇지 않아도 세비가 상당한 국회의원들이 추석 때 적지 않은 떡값을 받는다는 것은 국민 정서상 납득하기 어렵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오늘 제 통장에 어김없이 명절 휴가비 424만7940원이 찍혔다. 마음이 무겁고, 송구할 따름"이라며 "지난해에도 저는 명절 떡값을 받으며 느낀 불편한 심정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많은 분들이 공감과 문제 제기를 해줬다.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눌 것"이라고 선언했다.

우리 국회의원은 자신에게 부여되는 갖가지 혜택이 국민 정서에 비춰볼 때 타당한 것인지를 늘 고민해 봐야 한다. 야당 한 당협위원장은 "국회의원이 되면 보좌진을 2명으로 대폭 줄이는 운동을 펼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다짐이 정치권력의 한계에 부딪혀 실현될지 미지수이겠지만, 김미애 의원 같은 국회의원이 국회 구성원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기에는 현실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국민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국회의원, 정치인을 진심으로 원한다. 과도한 혜택을 스스로 털어내고 진정으로 섬기는 국회의원을 간절히 고대한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전망대와 카페를 만드는 일이 여러 가지 이유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세종에 만들겠다고 하는 세종 국회의사당이라도 호주처럼 야산 밑에 건립하면 어떨까.

이경욱 논설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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