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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케이팝 데몬 헌터스, 김구의 꿈이 현실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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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8. 27. 16:26

이우람 바다와하늘처럼 대표
이우람 바다와하늘처럼 대표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오직 한없이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 백범 김구, '나의 소원' 中

백범 김구 선생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아닌 '문화의 힘'을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으로 제시했다. 그 바람은 지금, 예상치 못한 장르와 무대에서 실현되고 있다. 음악·드라마·영화에 이어 이제는 애니메이션 뮤지컬까지 K-컬처가 전 세계 시장을 흔들고 있다. 올여름 넷플릭스를 강타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가 그 증거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 걸그룹이 한국 신화를 배경으로 귀신과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뮤지컬이다.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하고 미국 OTT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유통됐지만, 작품 속 무대가 '서울'과 한국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문화적 의미가 크다.

지난 7일 기준 전 세계 누적 시청수 1억5800만 회를 돌파해 넷플릭스 영어권 애니메이션 영화 사상 손꼽히는 흥행작으로 자리매김했다. K-팝 특유의 화려한 무대 연출, 한국적 색채의 캐릭터 디자인, 무당과 저승사자라는 한국 고유의 신화적 상상력을 결합한 스토리텔링이 세계 팬덤을 사로잡았다.

가장 흥미로운 건 작품 속 가상의 K-팝 그룹이 실제 음악 시장에서 기존 팝 스타들을 제친 기록을 세웠다는 점이다. OST 곡 Your Idol은 미국 스포티파이 차트 1위를 차지하며 (한국의 BTS를 제쳤고!), 또 다른 곡 Golden은 빌보드 글로벌 200에서 1위, 영국 오피셜 차트에서도 1위에 오르는 등 '가상이 만든 현실'이라는 독특한 기록을 세웠다.

가상의 아이돌이 실제 아이돌을 넘어서는 아이러니. 이는 단순한 숫자 게임을 넘어 콘텐츠의 세계관과 음악 산업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결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 세계 팬들이 이 '가상 아이돌'들을 마치 실제 그룹처럼 응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의 영향은 OTT와 음원 차트를 넘어 다층적 문화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우선 관광 산업으로의 파급효과가 눈에 띈다. 유튜브와 SNS를 살펴보면 내년에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밝히는 해외 팬들의 댓글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서울의 거리와 한국 전통 배경이 세밀하게 구현된 덕분에 애니메이션 속 장면이 실제 여행 버킷리스트가 된 것이다.

IP 확장 전략도 가시화되고 있다. 속편·뮤지컬·시리즈화 논의가 이미 진행 중이며 OTT에서 극장 개봉까지 노리는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의 확장이 계획되고 있다. 더 나아가 실제 K-팝 산업과의 콜라보도 활발하다. 트와이스가 OST에 참여했고 여러 아이돌 그룹들이 작품과 연계한 콘텐츠를 제작하며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은 문화 콘텐츠 패러다임의 변화를 시사한다. 과거 할리우드가 일방적으로 세계 대중문화를 주도했다면 이제는 한국적 서사와 미학이 글로벌 스탠다드를 제시하고 있다. 소니 픽처스라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한국 문화를 소재로 작품을 제작하고 그것이 전 세계적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 자체가 문화 헤게모니의 이동을 보여준다.

특히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K-컬처의 영향력이 단순한 수출을 넘어, 글로벌 창작자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백범이 꿈꾼 '문화강국'은 더 이상 추상적 구호가 아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의 음악·스토리·비주얼·정신문화가 결합해 세계적 성공을 거둔 하나의 완성된 모델을 제시했다. 이 작품은 OTT 시대의 K-컬처가 단순히 수출 상품이 아니라 전 세계 문화 트렌드를 선도하는 기획력과 창조력을 갖췄음을 증명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성과가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의 창의성과 시장의 자생력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한국의 전통 서사(무당·저승사자)·현대 대중문화(K-팝)·글로벌 플랫폼(넷플릭스)·해외 제작 시스템(소니 픽처스)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결과물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 성과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한국 문화산업 전반의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로 자리잡게 하는 것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보여준 것은 단순한 한류 열풍이 아니라 한국적 상상력이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문화의 힘은 국경을 넘어 마음을 움직인다. 실제로 이 영화를 보고 한국 방문을 계획한다는 외국인들의 반응을 SNS를 통해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서울의 아름다운 풍경과 한국 전통문화에 매료된 이들이 "내년에 꼭 한국에 가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은 문화가 지닌 진정한 힘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가상의 K-팝 아이돌이 실제 차트에서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들과 경쟁하고 한국의 무당과 저승사자가 글로벌 팬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백범이 꿈꾼 '한없이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의 구현체가 아닐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가장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 그 꿈은 지금도 쓰이고 노래가 되고 그리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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