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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K원전, 비상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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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일 기자

승인 : 2025. 08. 25. 15:30

박병일
박병일 기획취재부장
1978년 고리 1호기 상업운전은 대한민국을 세계 21번째 원전 보유국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넘어, 국가 미래 성장 동력의 한 축으로 자리 잡게 한 시작점이었다. 물론 당시 고리 1호기 건설의 중심은 미국 웨스팅하우스였다. 전체적인 건설 책임을 맡은 웨스팅하우스는 원자로 계통 설비 공급과 원자력 연료 공급을 담당했고, 터빈·발전기 계통 설비 공급과 토목 공사 감독은 영국의 GEC가 담당했다. 우리나라의 현대건설과 동아건설은 하도급 형태의 공사에 그쳤다. 그럼에도 1560억원이 들어간 고리 1호기 사업은 한국 원자력 기술 자립의 밑거름이 됐다.

이후 한빛 3·4호기부터 국내 주도 계약 방식이 도입되며 기술 이전에 공을 들였다. 1987년 우리나라는 미국 컴버스천엔지니어링(CE, 이후 웨스팅하우스에 인수됨)사로부터 가압 경수로형 원전 기술을 이전받으며 한국형 원자로를 건설했다. 이러한 노력은 최초의 한국 표준형 원전인 한울 3·4호기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후 원전 건설 및 운영 경험을 토대로 안전성과 경제성을 개선한 OPR1000을 개발했고, 마침내 10여 년간의 연구 끝에 신형 경수로 APR1400을 개발해 냈다.

자력으로 원전 건설을 할 수 있게 된 성과는 높이 평가받아 마땅함에도 최근 한국수력원자력과 웨스팅하우스의 비밀 협약으로 정치·산업 전반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전체 그림을 봤을 때 우리나라의 원전 수출을 위해서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손해 보는 내용이 아니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지식재산권 이슈로 굴욕적인 협약을 맺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웨스팅하우스의 원천 기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이미 업계에서 공공연한 사실이었음에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웨스팅하우스가 체코 원전 수주전에서 관련 소송을 진행했던 것은 물론,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수주 당시에도 관련 이슈가 발생했던 것만으로도 기술 독립 여부는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는 사안이었다. 2007년 6월 웨스팅하우스와 10년간 맺었던 기술 사용 협정(license agreement)이 종료되면서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비밀 협약 논란을 이어가려 한다면, 고리 1호기 이후 우리가 쌓아온 대한민국 원전 역사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의 의미와 가치를 먼저 곱씹어 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지식재산권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십수 년간 쌓아온 기술력과 노하우까지 평가절하돼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 논란으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대한민국 원전 기술이 세계에서 인정받고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부족함이 다소 있다 해도 그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다면 과감히 밀고 나갈 필요가 있다. 이 가치를 인정한다면, 불모지에서 이만큼 성장한 K원전 산업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은 잠시 접어두고, K원전에 날개를 달아주는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 묵묵히 나아가고 있는 K원전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그리고 세계 시장에서 뛰고 있는 이들에 대한 지지가 있다면 '굴욕'이라는 단어에 가려진 우리만의 강점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박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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