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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투어(Dark Tour)'는 요즘 새롭게 뜨고 있는 관광 상품이라고 한다. 다크 투어리즘(Dart Tourism)의 약어인 다크 투어는 각국이 감추고 싶은 장소를 찾아가 역사적 고증이나 사회상 등을 들려주는 신종 관광 상품이다. 예를 들면 독일의 아우슈비츠 등이 다크 투어의 대상이다. 이전의 흑(黑)역사를 감추고 싶어 하거나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장소 등이 탐방의 주된 코스다.
우리의 경우에도 용산 참사 현장 등 다양한 다크 투어 대상이 있겠다. 다크 투어 상품 개발 관광업체들은 열심히 대상을 발굴해 내고 있다. 이들 중 요즘 외국 관광객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다크 투어 성지는 바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이라고 한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학원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학부모가 가입해 있는 네이버 카페 등에는 다크 투어로 대치동이 주목받고 있다는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카페 글에는 대치동 학원가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들어가 있다.
다크 투어 가이드는 다크 투어 성지로 대치동을 선택한 이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사교육에 내몰려 청소년 시절의 추억을 빼앗기고 있는 현장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밤 10시를 전후해 대치동에 가본 사람은 도로 양 옆에 줄지어 늘어선 승용차나 소형 버스 등을 쉽사리 목격한다. 몇 ㎞를 가는 데 30분이 소요된다. 교통 체증이 극에 달하는 현장이다. 방학이면 하루 종일, 개학 기간에는 방과 후 대치동 학원가에서 공부를 하느라 고생한 자녀들을 신속히, 그리고 편안하게 집으로 이동시켜 휴식을 취하도록 하고 싶어 하는 부모의 열의가 담겨 있다. 대치동을 빠져나가는 데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경적을 울리거나 아우성을 치는 일은 별로 없다. 부모 모두가 같은 마음이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에 그렇다.
서울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대치동은 대한민국 사교육의 중심지이고 현장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의과대학 학생들이 외워야 하는 의학 전문 용어를 외우기도 한다. 버스 안에서는 문제집을 풀고 영어 단어를 외우는 학생들이다. 의사 부부인 지인은 어느 날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영어 단어를 내밀며 사전을 통해 단어의 우리말은 알 수 있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 물어 놀랐다고 했다. 대치동의 사교육은 초등학생들을 대학생 수준으로 밀어올리고 있을 정도다. 다크 투어 가이드들은 이런 얘기도 적당히 섞어 관광객들에게 대치동을 설명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사교육비가 엄청나다고도 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학원 못지않게 소아정신과도 성업 중이라고 곁들일 것이다. 우리의 치부처럼 다가오는 설명이겠다. 그 가이드의 말은 틀림이 없다.
외국은 우리의 대치동과 같은 곳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호주도 사교육에 관한 한 결코 우리에 뒤지지 않는다. 호주는 초등학교 때부터 좋은 공립 중학교, 즉 '셀렉티브 스쿨(Selective School)'에 들어가려고 애를 쓴다. 중학생 때에는 좋은 공립고교에 입학하려고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시드니에서 좋은 대학에 가장 많은 학생들을 보내는 '제임스 루스 농업고등학교(James Ruse Agricultural High School)'에 들어가기 위해 날고 긴다는 중학생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사교육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호주 한인 교포들과 중국인, 인도인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살고 있는 시드니 서부 스트라스 필드나 북부 채스우드 등지의 학원은 학원비도 비싸고 학습 강도도 세다. 그곳에서 호주 사회 각 분야의 리더가 되고 싶거나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고자 하는 중고교생들이 밤을 낮 삼아 공부한다.
그렇다고 모든 학생들이 그렇게 공부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대입을 목전에 둔 우리로 말하면 고3인 12학년 학생 학부모들은 12학년도 밤 10시 전에는 꼭 취침하도록 학교 측으로부터 요청받는다. 선행학습도 하지 말 것을 학교 측은 수시로 전한다. 공부에 별반 관심이 없거나 11학년 때부터 직업을 찾아 나서는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호주 명문대 진학을 꿈꾼다. 참고로 호주에는 세계 100대 대학이 10개 가까이 된다.
다크 투어로 대치동을 찾는 외국인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대치동 학원의 모습과 어린 학생들의 학습 열정이 호주나 중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그다지 과하지 않다는 점이다.
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학생들은 강도 높은 학습 압박에도 잘 견뎌가면서 세계의 리더로 성장한다. 안 그런 유명 인물들도 많지만 세상은 열심히 학습에 매진하는 그룹이 끌고 가는 것 아닐까.
사교육을 미화하는 게 절대 아니다. 남보다 더 빨리 달려가 목표를 성취하고 더 많이 벌어 편히 지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자식 얘기라면 더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치동이 다크 투어 대상이라는 게 석연치 않다.
이경욱 논설심의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