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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이재명 정부, 아세안에 ‘실용’을 답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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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승인 : 2025. 07. 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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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제46차 아세안 정상회의 본회의 시작을 앞두고 아세안 각국 정상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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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 "한국 새 정부의 아세안 정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뭐가 어떻게 다를까요?"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후 베트남이나 아세안 외교 관계자들은 만날 때마다 이런 질문들을 던졌다. 질문에는 기대와 함께 5년마다 바뀌는 구호에 대한 미묘한 피로감도 섞여 있었다.

지난 8년, 한국은 아세안이란 무대에 '신남방정책'과 '한-아세안 연대구상(KASI)'이란 두 편의 연극을 올렸다. 지난달 초 새롭게 막이 오른 이재명 정부는 '실용외교'를 기치로 내걸었다. 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외교 과제도 산적한 가운데 이제 이 대통령은 앞선 두 정부의 정책이 남긴 성과와 한계를 냉철하게 복기하고 무대로 향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은 그 자체로 획기적 전환이었다. 아세안을 한반도 주변 4강의 '플러스 알파(+@)'가 아닌, 외교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며 우리의 외교적 지평을 넓혔다. '사람·평화·상생번영'이라는 가치는 아세안의 마음을 얻기에 충분했고, 양측 국민의 상호 관심과 교류를 폭발적으로 증대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하지만 아세안은 마냥 평화와 상생의 목가적인 무대일 수가 없다. 아세안 국가들이 생존을 걸고 마주한 미중 경쟁 격화라는 지정학적 현실, 그 치열한 각축장에서 한국은 구체적인 전략적 입장을 제시하진 못했다. 경제와 문화 중심의 장밋빛 청사진에만 머물렀단 아쉬움이 남는다.

뒤이은 윤석열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아세안 연대 구상(KASI)은 신남방정책이 비워뒀던 '전략적 선명성'을 채우려 했다. 자유·인권·법치 등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며 안보·방산 등 민감한 분야까지 협력의 지평을 넓히려는 전략적 방향은 좋았지만, 아세안 국가들에 이는 '한 편을 선택하라는 압박'으로 보이기도 했다. 여기에 아세안을 동등한 주체로 보기보단 인태 전략이란 거대 전략의 하위 수단으로 여긴다는 인상도 줬다. 미중 경쟁 구도에 대한 선명한 입장이 오히려 아세안의 핵심 원칙이자 살아남기 위한 실존적 원칙인 '전략적 자율성'과 충돌했다.

지난 8년의 무대에서 우리는 '전략 없는 선의'와 '맥락 없는 전략'을 목격했다. 아세안은 이제 명실상부한 핵심 파트너이자 우리의 미래다. 이런 아세안과의 외교에서 이젠 우리 정부도 단기적 경제 이익 추구를 넘어선 진짜 '실용'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

대(對)아세안 외교에서 진정한 실용의 출발점은 전략적 공감 능력에 놓여있다. 아세안이 왜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지, 그들의 역사적 경험과 외교적 셈법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아세안을 향한 진심 어린 존중과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의 생존 전략에 한국이 어떻게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위협적이지 않은 '제3의 선택지'가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국익 창출도 가능할 것이다.

새 정부의 '실용'이 세 번째 오답으로 기록되지 않길 바란다. 아세안은 자신들이 현실을 이해하는 진짜 파트너를 기다리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아세안의 신뢰와 대한민국의 국익을 모두 얻어내는 진짜 '실리'가 되길 기대한다.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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