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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인사이트] 잔디 관리와 일정조정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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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선임 기자

승인 : 2025. 03. 21. 07:00

EPL급 잔디를 만드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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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일에 열린 코리아컵 2회전 수원 삼성대 서울 이랜드의 경기. 수언이 2-1로 승리했다./ 사진=장원재 기자
아시아투데이 장원재 선임 기자 = 지난 19일 수요일, 수원 삼성 대 서울 이랜드의 코리아컵 2회전 경기가 열렸다. 다른 2회전 경기는 주말인 22~23일에 열린다. 일정 변경의 이유가 있다. 25일 오후 8시에 벌어지는 한국 대 요르단의 월드컵 예선전 때문이다.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 관리재단은 "2~3일의 말미로는 최상의 잔디 컨디션을 맞추기 어렵다"라고 했다. 그래서 코리아컵 경기를 앞당긴 것이다. 문제는 일정 변경의 결과로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19일 날씨가 22~23일에 비해 쌀쌀해서 선수들의 체력 소모가 많고 부상 위험이 컸다는 점은 논외로 하자. 이 경기는 수원 삼성이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펼친 500번째 경기였다. 수원 삼성 프론트는 전력을 다해 홍보에 매진했고 현수막 등 이미 상당량의 홍보물 제작을 완료한 상태였다. 주말 경기라면 예상 관중도 더 많다. 19일 경기에 4000여 명의 관중이 들어왔으니 주말 경기였다면 1만 이상의 관중이 운집했을 것이다. 입장 수익 차액만 해도 1억을 넘어간다. 서울 이랜드도 피해자다. 센터백 자원이 모두 부상으로 출전이 어려웠다. 그래서 풀백 자원을 센터백으로 쓸 수밖에 없었다. 나흘 뒤에 경기가 열렸다면 사정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일정 조정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원종합운동장에서는 이틀 연속 프로추구 경기가 열리기도 했다. 15일 오후 2시에 여자축구 WK리그 수원 대 세종의 경기가 열렸고 다음날 오후 2시에는 K리그 1 수원과 울산이 자웅을 겨뤘다. 여자축구는 그날이 개막전이었다. 작년도 우승팀 수원의 홈구장에서 개막 공식 행사를 치러야 했다. K리그 일정 변경도 불가능했다. 울산은 리그 중간에 자리를 비워야 한다. 6월 14일부터 미국에서 열리는 클럽월드컵에 참가하기 때문이다. 이미 몇 경기는 일정을 바꾸었고, 추가 일정 변경이 불가피하다. 변경 여유 날짜가 절대 부족한 상황이다. 이틀 연속 실전을 치른다면 잔디 관리에는 확실히 어려움이 따른다. 해법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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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WK리그 개막전 수원 : 세종의 경기./ 사진=장원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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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6일 역시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리그 1 수원FC : 울산 HD의 경기./ 사진=장원재 기자
1990년 10월,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남북대결이 열렸다. 해방 후 첫 경평전이었다. 평양 경기를 먼저 했고, 잠실올림픽 경기장에선 10월 23일 양팀이 다시 만났다. 문제는 10월 13일에 열린 고연전이었다. 계약을 임의로 변경하지 않는 것은 근대사회의 핵심 덕목이다. 그래서 나온 방안이 경기장 보호다. '선약(先約)의 권리'를 존중하되, 경기 직후 양교 학생회가 경기장 터치라인을 따라 인간띠를 만들었다. 혹시나 모를 응원단의 피치난입을 사전에 봉쇄한 것이다. 열흘의 시간도 잔디 보수엔 그런대로 충분한 시간이었다. 결과는 황선홍의 헤드업 득점으로 한국의 1-0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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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경평전 잠실경기./ 사진제공=이재형 축구수집가
경기장 변경이 불가능했던 경우도 있다. 1995년 8월 13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한국 대 브라질의 친선 경기다.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사상 첫 방한 경기여서 반응이 폭발적이었지만, 경기는 잠실에서 열리지 못했다. 광복 기념 정부 행사가 잡혀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에 송출하는 경기라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명분으로 끝까지 잠실 개최 가능성을 찾았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행사용 임시 무대 철거 후 밤샘 재조립 등은 시일이 촉박했고, 경호 및 안전 문제 등은 사전 점검에 필요한 절대시간이 부족했다. 경기 결과는 둥가의 중거리슛 골로 브라질의 1-0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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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한국과 브라질의 친선경기.사진제공=이재형 축구수집가
짧은 기간 내에 경기가 연이어 열리면 잔디 손상은 불가피하다. 잔디 품질이 엉성하면, 최고의 경기력을 기대할 수 없다. 논스톱 패스 등 섬세한 플레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부상 위험도 커진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경기장은 어디를 막론하고 융단같은 피치를 자랑한다. 부럽기 그지없다. 잔디관리에 어마어마한 돈과 신경을 쓰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배경이 있다. 한 경기 개최로 얻는 이익이 관리비를 훨씬 상회하기 때문이다. '돈'이 되기에 그만한 비용을 잔디 관리에 투입할 수 있는 것이다. 영국 축구라고 늘 잔디 관리가 특급이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는 말할 것도 없고, 1990년대만 해도 잔디 관리가 지금 수준에 한참을 못 미쳤다. K리그 경기 개최로 얻는 이익으로는 EPL급 잔디 관리비를 기대할 수 없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다. 그래서 분명히 말씀드린다. 닭이 먼저다. EPL이 그랬다. 선투자로 품질을 높이자 전 세계로부터 투자자가 몰렸다. 기대이익이 있으면 투자자가 몰린다. 대한민국이라면 투자의 안정성도 높다. '사유재산 보호'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축구는 산업으로서의 잠재력이 크다. '섬세한 잔디 관리'는 투자 유치의 첫걸음일 수도 있다. 관광산업, 영화산업처럼, 축구산업으로 막대한 이익을 올리는 미래를 꿈꾼다. 그 출발점이 K-융단 잔디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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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일 수원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코리아컵 2회전 수원삼성:서울이랜드의 경기./ 사진=장원재 기자
수원월드컵 경기장 이야기로 돌아가자. 새로 보식한 잔디는 표면이 매끄러웠고, 유럽식으로 진흙기를 머금어 부드러웠다. 흙먼지가 하나도 날리지 않았다. 대표팀 경기를 치르기에 최상의 컨디션으로 보였다. 수원 삼성 박경훈 단장에 따르면, 대한축구협회에서 '예상 손실액을 산정해주면 배상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고 한다. 수원삼성 축구단은 대승적 차원에서 손실액 청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표팀의 선전이 한국 축구 전체의 흥행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멋진 승리를 기원한다. 잔디가 좋으면 경기력도 좋아진다. 관중과 국민의 행복도도 급상승한다. 투자 없이는 이익도 없다.
장원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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