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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장기사건 신속처리 ‘독’…업무과중·속도전 ‘이중고’ 경찰 수사부서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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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소영 기자

승인 : 2025. 02. 13. 14:49

전 수사부서 '수사 신속성 제고 항목' 신설
장기사건 보유율 등 새 평가지표 추가 부담
경찰청 "사건처리 기간 체계적 관리 취지"
만성적 인력부족·처리사건 폭증 등 현실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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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관련 없는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경찰이 올해 수사경찰 성과과제 평가지표에 '수사신속성 제고' 항목을 신설한 것을 두고 일선 수사부서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특히 '수사 완결성 강화'와 관련한 '장기 요구·요청사건 보유율' 항목이 베테랑 수사관의 이탈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경찰은 신속한 사건 처리로 대국민 서비스를 제고하겠다는 목표지만, 만성적인 수사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일선 수사부서의 입장에선 현장 고충을 외면한 보여주기식 평가에 지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아시아투데이가 입수한 수사경찰 성과과제 평가 지표에 따르면 올해부터 전 수사부서를 대상으로 수사 신속성 제고 항목이 신설됐다. 세부적으로 △사건 병합·이관 활성화(40점) △사건 처리기간(30점) △장기사건 보유비율(30점) 등이다. 수사 완결성 강화 항목에서는 장기 요구·요청사건 보유율(30점)도 새로운 평가지표로 추가됐다.

정량평가인 장기사건 보유비율 평가는 장기사건 비율의 적정 관리를 통해 신속한 실체 규명과 국민 피해 구제를 목표로 도입됐다. 하지만 사건 해결의 질보다 처리 속도에만 초점을 맞춘 평가여서 오히려 부실 수사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다. 수사인력 부족이나 고소·고발사건 증가,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 확대, 사건 복잡성 증대 등 복합적 요인으로 장기사건이 늘고 있지만 이를 신속히 해결하는데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신속한 사건 해결을 위한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얘기인 셈이다.

이같은 우려섞인 기류는 최근 경찰 내부망에서도 확인됐다. 한 경찰 수사관은 '수사팀 탈출 플랜' 제하의 글에서 "4년 2개월 동안 수사팀에서 근무했지만, 결국 버티지 못하고 포기하기로 했다"며 "1년에 몇 차례씩 장기사건 점검한다고 할 때마다 죄인된 것 같았다"고 토로했다.

일선 수사인력의 이탈을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로 고소사건 반려제도 폐지가 꼽힌다. 경찰은 경미한 사건이나 법리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고소사건에 대해 반려권한이 있었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대부분 접수 후 정식사건으로 처리하면서 업무부담이 가중됐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사건 보유비율을 성과평가지표에 포함하면서 경찰은 업무량 폭증에다 신속한 사건처리 압박의 이중고에 시달릴 개연성이 커졌고, 이는 수사부서 기피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섞인 분석이 고개를 들고 있다. 현장 수사관들은 무엇보다 '부실수사' 가능성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경찰청 관계자는 "장기 사건을 지속적으로 관리해 온 부분을 성과 지표에 반영하고 있고 이를 통해 사건 처리 기간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취지"라면서 " 장기적 관점에서 이를 위한 인력 증원, 수사관 업무 경감 시스템 개발, 사건 병합을 통한 현장 업무량 감소 등의 다각적인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당초 수사권 조정이 제대로 운영되려면 검찰에 있던 수사 인력도 함께 경찰로 이관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조치는 이뤄지지 않은데다 경찰 자체 인력을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다 보니 문제가 심화됐다"며 "성과평가 기준에 장기 사건 처리가 포함된다면 당장 해결해야 할 사건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수사관들의 심적 부담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국가 전체의 수사 인력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업무 강도를 높여 해결하려는 방식은 부실 수사를 초래하고 국민의 법적 서비스 만족도를 낮출 수밖에 없는 만큼 인력 증원과 합리적인 인사 평가 시스템을 통한 경쟁체제 구축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설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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