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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의 문화路]‘운명의 조우’로 만들어지는 존 배의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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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4. 09. 11. 13:31

재미 조각가 존 배(87) 11년만의 개인전..."70여년 예술여정 돌아봐"
존 배1 전혜원 기자
재미 조각가 존 배의 개인전 '운명의 조우'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다. 11년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개인전으로, 작가의 70여년의 예술 여정을 집약적으로 소개한다. /사진=전혜원 기자
분명 단단한 철사로 만든 조각 작품인데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사귀나 땅에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가볍고 유연해 보인다. 재미 조각가 존 배(87)가 가느다란 구리 선으로 창조해낸 형상들이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존 배의 개인전 '운명의 조우'가 열리고 있다. 11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개인전이다. 철사 조각을 용접해 이어 붙이는 작업을 해온 작가의 초기 강철 조각을 비롯해 연대기별로 주요 철사 조각과 드로잉, 회화, 최근작까지 70여년의 예술 여정을 돌아보는 자리다.

존 배 2 전혜원 기자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존 배의 개인전 '운명의 조우' 전경. /사진=전혜원 기자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난 존 배는 12살 때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했다. 재능을 타고나 프랫 인스티튜트에 4년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1965년 대학원 졸업 후 스물여덟이라는 나이에 프랫 인스티튜트의 최연소 교수가 됐다. 이후 그는 미국 뉴욕에서 김환기, 백남준 등 한인 예술가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뉴욕 얼터너티브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는 그는 철을 이용한 용접 조각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존 배의 조각은 비어 있는 공간 속에서 점이나 선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전 음표가 다음 음표로 대화하듯 연결되며 아름다운 선율로 완성되는 음악과도 같다. 작가는 공간 속에 놓인 점과 선과 대화를 이어가며 유기적인 구조로 작품을 만든다.
전시 개막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내가 음악가는 아니지만 음과 음이 만나듯 나의 조각도 서로 얘기를 하면서 점과 선이 만나는 것"이라며 "내 작품은 점들을 연결해나가면서 무의식에서 탄생하는 모양이다. 의도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무의식의 시각화"라고 말했다.

존 배의 개인전 전경
존 배의 개인전 '운명의 조우' 전경. /갤러리현대
존 배는 자신의 작품을 '공간 속 드로잉'이라고 말한다.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그의 작업은 거미줄이나 산호가 얽혀 있는 듯한 형상과 원형의 곡선으로 만들어진 비정형을 보여준다. 또한 동시에 물방울 같이 내부가 훤히 보이는 투명성을 가진다. 그의 조각은 하나의 뿌리와 줄기로부터 비롯된 식물을 보는 듯하기도 하고 나무의 곡선, 유영하는 생명체 등을 떠올리게 한다. 철의 무거운 속성에서 벗어나, 공간 속에 그려진 드로잉으로 다가온다.

갤러리현대 관계자는 "존 배의 조각은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조형성을 떠올리게 한다"면서 "비정형적인 형태로 운동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존 배3 전혜원 기자
재미 조각가 존 배. /사진=전혜원 기자
2층 전시장에서는 존 배의 최근작들을 볼 수 있다. 이중 'Heaven and Earth' 시리즈는 바닥에서부터 짧은 철선을 지그재그 형식으로 쌓아 올려 리듬감을 증폭시킨 작품들이다. 마치 무의식 깊은 곳에서 요동치는 무형의 형상을 보는 듯하다. 2층에서는 존 배의 드로잉 작품도 선보인다. 딸 리아나가 임신 중 희귀 박테리아에 감염돼 응급 심장 판막 치환수술을 받게 되면서 힘들었던 경험을 승화한 작품이다.

갤러리현대 관계자는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존 배의 예술적 여정은 놀라운 진화의 연속"이라며 "음악과 스포츠, 발레, 현대무용 등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공간 속 움직임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는 영감으로 작동했다. 이번 전시에서 살아 있는 듯한 작품의 생명력을 경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20일까지.

존 배 《운명의 조우》_전시 전경
존 배의 개인전 '운명의 조우' 전경. /갤러리현대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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