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테라스에 갇힌 노년, 떠나려는 상상으로 오늘을 견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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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는 사건이라 부를 만한 전환점이 거의 없다. 대신 반복이 있다. 같은 자리에 앉고, 같은 사람을 보고,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견디는 반복이다. 그러나 이 반복은 지루함이 아니라 무게를 만든다. 그 무게가 쌓일수록, 노년이라는 시간과 전쟁 이후의 삶이 어떤 상태인지가 점점 또렷해진다.
'바람의 용사들'은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세 명의 참전용사가 노년이 되어 프랑스의 한 요양원 테라스에서 보내는 나날을 그린 작품이다. 프랑스 극작가 제랄 시블레라스가 쓴 이 희곡은 톰 스토파드의 영어 번역과 각색을 거치며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화동연우회는 이 작품을 감정적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과도한 비극성도, 과장된 희극성도 배제한 채 인물들이 놓인 상태를 차분히 드러낸다. 그래서 이 공연은 관객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 앉아 있으라고 초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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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은 전쟁 중 머리에 박힌 파편의 후유증으로 실신을 반복한다. 그는 깨어날 때마다 같은 말들을 되뇌며, 자신의 공포를 논리처럼 설명하려 한다. 생일이 겹치면 누군가는 죽는다는 그의 확신은 처음에는 웃음을 자아내지만, 반복될수록 그 웃음은 멈춘다. 필립의 말은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죽음을 너무 가까이서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불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앙리는 다리를 절며 매일 산책을 나간다. 그는 세 사람 중 가장 현실적인 인물처럼 보인다. 탈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는 위험을 계산하고, 몸의 상태를 점검하며, 계획의 허점을 짚는다. 그러나 그의 현실 감각은 포기와 다르다. 오히려 그는 누구보다 바깥을 갈망한다. 매일 반복되는 산책은 그가 아직 세상과 연결돼 있다는 증거처럼 보인다. 앙리는 모험을 말리면서도, 그 모험을 꿈꾸는 마음만큼은 끝내 버리지 않는다. 이 모순된 태도는 무대 위에서 조용한 긴장을 만든다.
구스타프는 냉소와 독설로 대화를 주도한다. 귀족 출신이라는 자부심을 놓지 않으려 애쓰며, 말로 자신의 세계를 지키려 한다. 그의 언어는 공격적인 태도를 띠지만, 그 이면에는 바깥을 향한 강한 욕망이 비친다. 구스타프가 탈출 계획을 가장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이유는, 그가 가장 용감해서가 아니라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말은 그의 방패이자 무기다. 그러나 이 공연에서 그의 언어는 점점 균열을 드러낸다. 독설 뒤에 숨겨진 불안이 관객에게 서서히 전해지면서, 웃음은 점점 쓸쓸한 여운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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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계획은 점점 구체화된다. 밧줄을 준비하고, 경로를 논의하고, 체력을 계산한다. 이 과정은 우스꽝스럽고 동시에 처절하다. 노년의 몸으로 감행하기에는 무모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계획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장면들은 관객에게 중요한 사실을 일깨운다. 이들에게 탈출은 목적이 아니라 상태다. 실제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떠나려는 상상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상상은 이들을 하루 더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테라스에 놓인 개 석상은 이 작품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기능한다. 구스타프는 이 석상을 끝내 데려가려 한다. 움직이지 않는 돌덩이를 자유를 향한 여정에 포함시키려는 이 집착은 처음에는 웃음을 자아내지만, 곧 질문으로 변한다. 우리는 자유를 꿈꾸면서도 무엇을 끌고 가는가. 과거의 기억, 자존심, 혹은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증명해 주는 무언가를 끝내 놓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이 석상은 자유의 조건이 아니라 자유의 무게처럼 느껴진다.
이 작품을 화동연우회의 공연으로 바라볼 때, '바람의 용사들'은 또 다른 층위를 획득한다. 1991년 결성된 화동연우회는 국내 초연과 세계 초연, 미발표 고전과 현대극을 꾸준히 소개해 온 극단이다. 김민기, 백남준, 이낙훈 등 한국 문화예술사의 거목들이 거쳐 간 이력은, 이 무대 위에 보이지 않는 무게로 남아 있다. 배우 신구 역시 그 시간의 결을 함께 만들어 온 이름으로, 화동연우회가 축적해 온 연극적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이 극단의 공연에는 늘 시간이 겹쳐진다.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고민이 동시에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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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적으로 살자"는 말은 이 공연에서 결코 구호처럼 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 대사는 쓸쓸하다. 영웅이 되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고, 그렇다고 모든 것을 내려놓기에는 아직 살아 있다는 감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모순이 작품을 끝까지 붙든다. 이들은 위대한 업적을 남기려 하지 않는다. 다만 한 번쯤은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가보고 싶어 한다. 그 마음이 이들을 영웅처럼 보이게 만든다.
공연은 탈출의 성공 여부를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끝까지 탈출을 상상했다는 사실이다. 상상은 이들을 연결하고, 하루를 버티게 하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만든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테라스의 풍경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관객은 자신이 지금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그리고 아직도 어디론가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남아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바람의 용사들'은 큰 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설명하지도, 설득하지도 않는다. 다만 조용히 묻고, 오래 남는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흔들리는 마음처럼, 이 공연은 관객의 안쪽에서 천천히 흔들린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