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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노조의 집회 장소가 여의도 본원이나 국회 앞에 집중되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은행 정문 앞 시위는 이례적입니다. 이는 IMF 미션단이 한은을 찾는 일정을 고려해 진행한 것이죠. 앞서 미션단은 12일 금감원을 직접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정부 조직개편 논란을 의식한 듯 화상회의로 일정을 바꿨습니다. 노조는 간접적으로라도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한은 앞을 택했습니다.
시위에 나선 금감원 직원은 "최근 논란의 핵심은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 분리와 공공기관 지정"이라며 "이번 IMF FSAP에서 우리 상황을 직접 공유할 기회가 사라져, 개인적으로라도 목소리를 전해야겠다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노조의 논리는 일관됩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IMF 권고는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금융감독기구 설립이었고, 이 결과 1998년과 1999년 금융감독위원회(금융위원회 전신), 금감원이 출범했습니다. 또 2020년 FSAP 평가에서도 금감원 권한 강화를 단기 과제로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정부 개편안은 이와 정반대로 감독 권한을 쪼개고 독립성을 약화시키는 조치라는 게 노조의 주장입니다. 특히 금소원 분리에 대해서는 감독 기능 간 충돌, 검사·제재 중복, 책임 회피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합니다.
다만 노조를 향한 시각이 곱지만은 않습니다. 일부에서는 "소비자보호 강화를 위한 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가볍게 볼 수 없다"는 시각이 나오죠. 감독 기능 조정이라는 큰 틀의 변화가 필요해, 노조의 반대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이러한 문제의식까지 함께 안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갈등이 팽팽한 가운데, 금융당국 수장들은 수용 쪽으로 기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16일 임원회의에서 "금감원은 공적 기관으로서 정부 결정을 충실히 집행할 책무가 있다"며 사실상 수용 입장을 밝혔죠. 그는 "감독체계 개편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수개월간 논의와 당정 협의를 거쳐 확정된 사안"이라고 언급하며, 국회 논의 과정에 적극 참여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이세훈 수석부원장을 단장으로 한 입법 지원 태스크포스(TF)도 즉시 가동하라고 지시했죠. 전날 이억원 금융위원장 역시 "공직자로서 최종 결정이 내려지면 그 결정을 따르는 게 책무이자 의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금융위와 금감원 수장이 잇따라 수용 기조를 내놓자, 금감원 노조의 강경 투쟁은 한층 고립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금감원 직원들은 이날로 엿새째 '출근 시위'를 이어가고 있으며, 일부는 대통령실과 국회 앞에서 1인 시위에도 나서고 있죠.
이번 사안은 단순한 조직개편을 넘어 한국 금융감독의 근간을 건드리는 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IMF 권고와 역행한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이, 다른 한쪽에서는 금융소비자 강화를 위한 개편 불가피론이 맞서고 있죠.
결국 관건은 정부·국회·금감원 모두가 '감독 독립성'과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두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조율을 이뤄내는 것입니다. 서로의 입장을 보완해낼 수 있다면 금융소비자 보호 체계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