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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학 칼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중 어느 쪽이 치즈처럼 잘릴 것인가?

[강성학 칼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중 어느 쪽이 치즈처럼 잘릴 것인가?

기사승인 2023. 05. 24.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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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국제평화와 안전을 약속한 유엔헌장과 파리헌장을 동시에 노골적으로 위반하면서 작년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기습 침략하여 시작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벌써 2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종전은 물론 평화의 전망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그동안 수많은 양국의 병사들이 참담하게 죽어갔지만 어느 쪽도 지금의 상태에서 전쟁을 멈출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2014년 기습침공으로 과거 러시아의 중요한 군사전략 기지였다는 이유로 크림반도와 그곳으로 가는 길 위의 회랑 같은 영토를 장악하여 러시아에 병합하고 기정사실화에 성공했다. 이 달콤한 성공은 그에게 제2의 우크라이나 기습침공을 향한 마약으로 작용했다. 

냉전체제의 종식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우크라이나의 비핵화를 요구하면서 그 나라를 보호하겠다는 공동으로 약속한 1994년 부다페스트조약을 지키지 못했다. 당시 노벨 평화상을 아무런 업적도 없이 미리 수상하여 스스로 어안이 벙벙했던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대통령은 마치 노벨평화상에 보답이라고 하듯이 우크라이나인들이 앞장서서 항전하지 못하자 대 러시아 대응에서 소극적 자세를 취함으로써 결국 그는 러시아 자신이 국제평화와 안전을 위해 그리고 유럽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스스로 각각 서명했던 유엔헌장과 파리헌장을 위반한 푸틴의 우크라이나 영토의 침략과 약탈행위를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유럽에서 1938년 뮨헨조약의 비극적 운명의 재판이었다. 당시 히틀러가 강압적으로 뮨헨조약에서 얻어낸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Sudetenland)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음해 1939년 3월 15일 체코슬로바키아의 정부를 협박하여 체코슬로바키아를 통째로 집어삼켜버렸다. 그럼에도 서방국가들은 허공을 향해 규탄만 했을 뿐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히틀러는 성공에 또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처럼 민주국가들의 약점을 파고든 히틀러처럼 푸틴도 2014년의 성공을 확장하여 2022년에 우크라이나를 특수군사작전이라는 구실 하에 통째로 먹으려 들었다. 

그러나 2022년의 우크라이나는 2014년의 우크라이나가 아니었으며 유럽과 미국도 2014년의 유럽과 미국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우크라이나의 침공으로 야기된 러시아의 침략행위는 곧 유럽의 전통적인 전쟁의 양상으로 변모해버렸다. 유럽국가들은 그곳에서 어느 국가의 헤게모니 추구도 인정하지 않고 견제하는 전통적 정책으로 복귀하였을 뿐만 아니라 NATO의 주도국인 세계최강의 미국까지 우크라이나를 돕고 나섬으로써 이 전쟁은 지루한 소모전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그 결과 나폴레옹이 말기에 전 유럽국가들을 상대로 싸워야 했던 것처럼 러시아의 푸틴은 세계최고의 강대국인 미국을 포함하여 전 유럽국가들을 상대로 전쟁을 치러야 하는 곤경에 처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의 승리는 가망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푸틴의 정치적 및 신체적 생존이 걸린 이 전쟁에서 푸틴은 고르바초프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일방적 철수를 단행했던 것처럼 행동할 수도 없다. 그는 고르바초프와는 달리 바로 자기 자신이 이 전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세계인들은 궁지에 몰린 푸틴이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실제로 사용할 경우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하고 진지하게 염려하기 시작했다. 강대국들 간의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는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박사가 우크라이나에 일정한 영토를 양보하는 선에서 19세기 식으로 전쟁을 끝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여 적지 않은 비난을 받았다. 그 후 러시아는 1953년 한국전쟁에서처럼 현 전장의 군사적 위치에서 휴전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그동안의 엄청난 피의 대가를 헛되게 하는 것이라서 우크라이나에 의해 일언지하에 거부되었다.

그렇다면 이 전쟁은 언제 어떻게 끝날 수 있을 것일까? 역사의 신은 말이 없다. 전쟁종결 시기를 예측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종결의 논리를 분석할 수는 있다. 역사적 패턴을 따른다면 푸틴의 축출이전에는 종전이 불가능하다. 즉, 한국전식의 휴전으로 종전이 불가능하다면 과거 유럽의 전통적 방식인 "불만의 균형"에 기초한 합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현 집권세력을 신-나치주의자라고 비난을 계속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쟁에서 수많은 우크라이나 대규모 아동들의 납치와 같은 반인륜적 대량학살에 해당하는 러시아의 전쟁행위들은 푸틴이야 말로 제2의 히틀러임을 입증해주었다. 그리하여 지난 3월 17일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마침내 푸틴 대통령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여 푸틴을 전범자로 규정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히틀러의 대량학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제2차대전 종결 후 1945년 11월 20일에 연합국 군사재판(Military Tribunal)이 열려 자살한 히틀러를 제외한 나치 전범들을 심판한 뉴렘베르크(Nuremberg) 재판의 정신을 구현한 것이다. 인류에 대한 범죄자,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범으로 낙인찍힌 푸틴과의 협상은 도덕적으로는 물론이고 국제법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전쟁은 제2차 대전의 종결양식을 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것은 사실상의 무조건 항복을 받을 때까지 싸워 승리한 뒤에 전범자들을 군사재판에 회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종결양식은 미국이 직접 참전하지 않으면 거두기 어려운 성과이고 또 미국은 제3차 대전을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가 전쟁을 포기하고 종전과 평화협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 전쟁의 러시아 중력의 중심부인 푸틴이 정치적으로 제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제거에 미국은 직접 나서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직접적인 전쟁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닌 주도하에 러시아 혁명은 제1차 대전당시 차르 니콜라스(Nicholas) 2세를 타도하고 1918년 3월 3일 당시 버거운 교전국 독일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the Treaty of Brest-Litovsk) 조약을 체결하여 영토적으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핀란드, 그리고 폴란드까지 모두 양보하면서까지 휴전을 택했다. 당시 레닌에겐 혁명정권의 생존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혁명이나 쿠데타 상황이 러시아내에서 재현되지 않을까? 만일 그렇게 된다면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과거 소련제국처럼 러시아 국가연합이 다시한번 치즈처럼 잘려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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