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삼고초려 벌인 산업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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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재계에 따르면 한화를 먼저 찾아온 쪽은 산업은행이다.
한화그룹이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 방산 분야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김승연 한화 회장의 장남 김동관 부회장은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이사를 맡았다. 한화그룹은 11월1일을 기점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한 방산 사업재편을 추진하던 터다. 대우조선해양은 군함, 잠수함 등 특수선 부문을 보유한 방산 기업으로 한화의 '육·해·공 통합 방산 서비스'를 완성할 마지막 퍼즐이 될 수 있다.
산업은행이 문을 두드린 국내 주요 그룹 가운데 방산 계열사를 보유한 곳은 현대차·한화·현대중공업이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로템, 현대중공업은 군함과 잠수함 등을 일부 생산한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전기·수소차·도심항공모빌리티(UAM) 분야에 미래를 걸었고, 현대중공업은 이미 대우조선해양 합병이 무산된 바 있다.
한화그룹과 산업은행의 사전 조율은 두 달이 채 걸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산업은행은 지난 3년간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합병을 진행한 경험이 있고, 한화에는 대형 인수합병(M&A) 추진에 익숙한 조직이 갖춰져 있다"며 "속도감 있게 진행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의 강력한 의지도 대우조선해양의 빠른 매각을 이끌어낸 것으로 풀이된다. 강 회장은 지난 6월 취임한 이후 핵심 선결 과제로 '대우조선 매각'을 내세웠다. 지난 14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연구개발(R&D)을 강화하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경영 주체가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게 대우조선을 구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며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보다) 빠른 매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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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이 신속하게 진행한 대우조선해양 매각에 돌발 변수가 발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석근 서강대 석좌교수는 "경제적 논리로 형성된 가격으로 빠르게 매각됐다면 별 문제가 없지만, 정책적 논리가 작용했다면 항상 뒷탈이 생긴다"며 "우선협상 기간 중 우발적 채무가 발견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또 "유럽의 경우 최종 딜이 마무리된 후에 1년 내에 우발적 채부가 발견되면 판매자가 책임지는 조항 등을 우선협상 기간에 마련하기도 하는데 이런 문제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업은행은 한화그룹을 우선 인수 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다른 기업들의 응찰을 받는 기간을 운영한다. 강 회장은 "이 기간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기업이 있다면 한화그룹에서 협상 대상자가 변경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대우조선해양 매각은 지난 21년 여간 수많은 잡음이 뒤따랐던 만큼 섣불리 인수 의사를 밝힐만한 기업은 없을 가능성이 크다. IB 업계 한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처럼 수차례 인수, 합병이 무산됐던 기업은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 있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시장에 조성된 상태"라며 "딜에 응하는 비딩 기업 자체가 적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편 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의 2조원대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49.3%를 확보할 계획이다. 상세 실사 후 경쟁을 거쳐 최종 인수자로 선정되면 오는 11월말 경 본 계약 체결이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