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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터미네이터 우영우

[칼럼]터미네이터 우영우

기사승인 2022. 08. 2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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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문화평론가
평소 다니던 검도관의 관장님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광팬이다. 뉴스를 보는 것 자체가 힘든 요즘, 인생드라마로 '비밀의 숲' 이후 최애 드라마를 만났다고 즐거워했는데 종방으로 섭섭한가 보다. 여운 때문인지 우영우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가 길어져 수련 시간을 훌쩍 넘겼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문뜩 생각이 떠올랐다. 두 드라마 모두 법과 관련된 장르라는 성격 이외에도 주인공의 캐릭터가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비밀의 숲에서 검사 황시목(조승우 분)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분)는 분명 판이한 캐릭터다. 하지만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 말고도 둘의 공통점은 타인의 감정을 공유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전자는 뇌수술로 인해 감정이 사라진, 그럼에도 실체적 정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검사다. 후자의 경우 자폐성 장애로 타인의 감정을 고려해 말할 줄 모른다. 그러나 본래 법조문이 구현하고자 하는 정신을 액면 그대로 해석해 정의를 구현하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둘 다 모순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직업윤리라는 관점에서 보면 황시목은 옳고 우영우는 문제가 있다. 검사는 법과 정의에 따라 사건을 파헤치고 범죄사실이 있다면 피의자를 법정에 세워야 한다. 황시목을 감정이 배제된 극단의 캐릭터로 설정한 것은 어쩌면 고도의 직업 윤리관이 요구되는 검사라는 직책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함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우영우는 변호사이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클라이언트의 관점에서 사건을 다뤄야하는 책무를 진다. 그런 점에서 우영우는 사실 변호사보다는 검사가 더 어울리는 인물이다. 감정이나 맥락이 기준이 되기보다는 법의 논리와 철학을 정확히 적용할 수 있는 냉철한 능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영우가 해결한 13개의 메인 사건들이 모두 정의로운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어떤 사건은 부당한 소송을 의뢰한 원고가 판결에서 졌음에도 결과는 억울한 피고인의 회사가 부도가 나는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좋은 뜻과는 별개로 엉뚱한 결과가 일어나기도 하는 사회 부조리를 그린다는 점에서 드라마 우영우는 매우 섬세하다. 비밀의 숲이 숨 막히는 전개로 사회 거악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 흥미로운 드라마라면 우영우는 아주 자연스럽게도 우리가 직면한 모순을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독특함이 있다.

한편 비밀의 숲이 특별한 사건을 중심으로 한 음모의 음모가 반전의 반전을 이루는 미스터리물이라면, 우영우는 매회 개별 사건을 다루며 사연을 이끌어가는 피카레스크 구성을 취한다. 거기에 출생의 비밀 그리고 범인은 의외의 인물로 가까이에 있다는 클리셰를 활용한다. 그러나 여느 막장 드라마처럼 스토리를 질질 끄는 법이 없고 바로 "태수미가 네 엄마다"와 같은 대사로 막장의 정형성을 뒤틀어 버린다. 이는 우영우에게 비밀이란 것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인데, 말하자면 주인공의 캐릭터가 고스란히 스토리라인에 반영된 셈이다.

또한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는 그녀는 맥락을 파악해야 하는 메타포나 중의적인 표현을 구사하지 못한다. 그녀의 의사소통 방식은 매우 직접적인데, 우영우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의 공간에서 사법 정의는 요원하다. 법리와 사실관계가 왜곡된 채 '맥락으로만 이해되는 부조리'를 너무도 많이 재연해왔기 때문이다.

빙빙 돌릴 것 없이 우영우처럼 표현하면, 사실 주인공은 AI를 닮아있다. 저장된 데이터를 통으로 읽어내고 멀리 떨어져 있는 논리를 비선형적으로 연결하는 능력에 더해 하나씩 감정을 배워나가는 우영우의 캐릭터는 마치 딥러닝 기술로 학습을 통해 생각하고 감정까지 공유하는 AI와 유사하다. 요즘 들어 세간에 법 해석과 적용을 AI에게 맡겨야 한다는 말들이 많다. 여기에서 그 이유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드라마를 하나의 비유로 이해해 보면, 변호사 우영우가 이상한 것은 그녀가 미래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컴퓨터에게 법을 맡기는 시대는 우리가 거부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당장 지금 우리 모습을 바꿔야 한다. 우영우가 경고하는 지점이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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