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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삭풍, 겨울의 거센 찬바람

[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삭풍, 겨울의 거센 찬바람

기사승인 2021. 11. 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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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주필
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최종 컷
대체로 소설(小雪, 11월 22/23일~12월 6/7일)인 11월 하순 어간부터 평균 기온이 5도 이하로 내려가고 추위가 매서워져 겨울 기분이 제대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겨울 기분을 가장 잘 느끼게 만드는 것이 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북쪽에서 불어오기 시작하는 차디찬 겨울바람이다. 흔히 삭풍(朔風)으로 불리는 이 바람은 실은 겨울철에 대륙 특히 시베리아로부터 한반도로 세차게 불어오는 차가운 북서계절풍의 다른 이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삭풍은 한국이 대륙의 일부임을 실감케 해주는 물상의 하나다.

이 무렵 가끔 삭풍 즉 강한 북풍이 휘몰아쳐 헐벗은 나무를 흔들어 얼마 남지 않은 가랑잎들마저 떨어뜨리고 땅에 쌓인 낙엽들을 이리저리 휩쓸어가는 스산한 늦가을과 초겨울의 정경을 연출한다. 그리하여 이 무렵의 전형적인 풍광은 찬 바람에 낙엽이 떨어져 이리저리 휩쓸리는 모습일 것이다. 차고 강한 바람에 나뭇가지에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던 마른 잎들이 우수수 지거나 이미 땅에 떨어진 낙엽들이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스산한 모습에 겨울의 내도를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삭풍이 만드는 풍광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삭풍은 솔가지를 지나며 휘이익 소리를 내고, 전깃줄이나 빨랫줄에 부딪쳐 위이잉 소리로 공포를 자아내는 음향 효과도 발휘하기 때문이다.

삭풍은 본래 북쪽에서 불어오지만 지구 자전의 영향으로 편서풍이 되어 북서풍 또는 서풍이 된다. 삭풍은 실은 주로 늦가을에서 이른 봄까지 북쪽에서 불어오는 거센 찬바람인 북서계절풍인 것이다. 우리는 북서계절풍이라고 부르지만, 영국 시인 셸리(P. B. Shelley)는 북쪽에서 불어오는 이 찬 바람을 아예 서풍으로 불렀다. 그의 〈서풍부(Ode to the West Wind)〉라는 장시의 첫 연(聯)은 “오 거센 서풍, 너 가을의 숨결이여! / 너의...존재로부터 죽은 잎사귀들은 / 마치 마법사에게서 도망치는 유령처럼 쫓겨다니누나”라고 늦가을 삭풍에 낙엽들이 휩쓸려 다니는 스산한 풍광을 노래했다.

옛말에 “소설 추위는 빚내서라도 한다”고 했듯이, 소설 어간부터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된다. 전형적인 겨울의 물상인 얼음이 얼고, 눈이 내리고, 강하고 매서운 삭풍이 불면서 한파가 밀려오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 우리 선조들은 이 무렵부터 문풍지도 다시 바르는 등 겨울의 찬 외풍을 막기 위한 집 안 보수작업을 하고, 겨울 동안의 땔감을 준비하고, 시래기를 엮어 달고 무말랭이나 호박고지 등을 말려 겨울 찬거리를 마련하는 등으로 월동 준비의 마무리에 들어갔다. 지금보다 훨씬 더 추웠고 게다가 지금과 같은 난방시설이 없었던 과거에는 겨울채비를 더욱더 단단히 해야 했다.

삼한사온이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과거 한반도의 겨울은 전반적으로 삭풍이 휘몰아치고 한강이 꽁꽁 어는 혹한의 계절이었다. 그만큼 시베리아에서 한반도로 불어오는 삭풍은 혹독하게 차가웠던 것이다. 북방에서 내려오는 한랭전선이 주기적으로 주춤거리기는 했지만 이내 곧 다시 대세가 되어 한반도를 지배하곤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추위를 몰고 오는 삭풍이 매섭지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과거 매서운 삭풍과 한파를 경험했던 분들은 오늘날의 비교적 온화한 겨울 또는 난동(暖冬)이 비정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난동은 지구의 온난화 현상에 의한 이상(異常) 기후다. 그런데 그런 이상 기후인 난동이 어느덧 일상화하여 이제는 난동이라는 말이 거의 쓰이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과거 혹한을 경험했던 분들은 강력한 한파가 밀려와 호수와 강을 얼어붙게 하는 겨울이 그리워질 정도다. 특히 사람들로 하여금 옷깃을 여미며 종종 걸음으로 사라지게 하고, 낙엽을 이리저리 휘몰아 다니며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전깃줄이나 솔가지에 부딪쳐 음산한 소리를 내는 저 혈기왕성한 삭풍이 세차게 불어와 겨울을 겨울답게 하는 제대로 된 겨울이 그리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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