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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지킨 형의 자리, 든든히 열어준 아들의 길…이순형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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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라 기자 | 김소영 기자

승인 : 2026. 10. 26.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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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공후사' 가치관 최우선 경영 원칙
인재 가능성 믿고 장기 성장에 투자
경영공백 인정·미래성장 기반 다져
선대 뜻 이어받은 가족 화합의 가풍
'3세대 사촌경영' 세대교체 물꼬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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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장교 출신인 이순형 세아그룹 회장은 원칙과 규율, 조직에 대한 책임을 중시하는 경영인이다.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안정을 앞세우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가치관은 그의 경영을 관통하는 원칙이기도 하다. 그러나 강직한 원칙주의자의 이면에는 가족과 동료를 향한 깊은 애정,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끝까지 짊어지려는 묵직한 의지가 자리하고 있다.

1949년생인 이 회장은 1974년 계열사 해덕기업 상무로 경영에 첫발을 내디뎠다. 2001년에는 그룹 지주회사인 세아홀딩스 부회장에 올라 형인 고(故) 이운형 회장과 함께 그룹 경영의 양축을 담당했다. 두 사람은 단순한 형제를 넘어 기업의 흥망을 함께 짊어진 동반자였다. 서로를 향한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호흡을 맞춰온 이들의 경영은 재계에서 '형제경영의 모범'으로 회자됐다.

그러나 2013년, 예기치 못한 이별이 찾아왔다. 형 이운형 회장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평생을 함께해온 형이자 사업의 동반자를 잃은 충격은 컸다. 이 회장은 당시 "인생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됐다"는 취지로 심경을 털어놓았다. 그룹의 앞날을 논하기에 앞서 한 사람으로서 감당해야 했던 상실의 무게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슬픔에 잠겨 있을 시간조차 넉넉하지 않았다. 그룹을 둘러싼 혼란을 수습해야 했고, 갑작스럽게 경영의 중심을 잃은 임직원들을 다독여야 했다. 경영 승계를 준비해야 할 조카와 아들의 앞날도 그의 어깨에 놓여 있었다. 형을 잃은 동생으로서의 비통함과 그룹을 책임진 경영인으로서의 책무가 한순간에 겹쳐진 것이다.

당시 64세였던 이 회장은 결국 그룹 전체를 책임지는 자리에 섰다. 형의 빈자리를 대신한다는 것은 단순히 경영권을 이어받는 일이 아니었다. 형과 함께 쌓아온 신뢰를 지키고, 가족의 미래를 보듬으며, 수많은 임직원의 삶이 걸린 조직을 흔들림 없이 이끌어야 하는 일이었다.

이 회장은 형의 별세 이후 첫 공식 석상에서 "당분간 나를 중심으로 그룹이 운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무거운 책임감이 담겨 있었다. 슬픔을 드러내기보다 먼저 조직의 불안을 가라앉히고,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을 분명히 한 것이다. 형을 잃은 동생은 그렇게 그룹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됐다. 먼저 떠난 형과 함께 일궈온 세아의 내일을 지키겠다는 다짐은 그날 이후 이 회장이 짊어진 가장 무거운 책임이자,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약속이 됐다.

◇ 그룹 위기 극복하고 미래 연 '덕장'의 리더십
"1등 기업에는 불황이 없습니다. 2등 기업에는 불황과 호황이 함께 있고, 3류 기업에는 늘 불황만 있습니다."

이순형 회장이 경영진에게 자주 건네는 말엔 특유의 카리스마가 묻어난다. 업황에 기대기보다 어떤 환경에서도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류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 회장의 강인한 리더십 아래 세아그룹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그는 단순히 경영 공백을 메우는 데 안주하지 않고, 과감한 결단과 실행력으로 그룹의 미래 성장 기반을 다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회장은 2014년 이탈리아 강관업체 이녹스텍 인수, 2015년 포스코특수강 인수, 2016년 미국 생산법인 설립 등 굵직한 사업 확장을 추진하며 강관·특수강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했다.

특히 해외 생산거점 확대는 오늘날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속에서 관세 부담을 줄이고 현지 시장에 대응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성과의 저변에는 인간 중심의 경영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이 회장이 세아홀딩스 부회장으로 재직하던 2005년, 세아그룹은 사명에 '세상을 아름답게'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산업의 근간인 철로 말미암아 사람과 사회에 이로운 가치를 남기겠다는 뜻이다. 이 회장 역시 당장의 성과에만 매몰되지 않고 인재의 가능성을 믿으며 장기적인 성장에 투자해왔다.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따뜻한 면모가 드러난다. 평소 말수가 적고 강직한 성격으로 알려졌지만, 직원들에게 먼저 다가가 안부를 묻는 데는 거리낌이 없다. 새해 첫날과 명절 연휴를 앞두고는 서울 마포구 세아타워의 사무실을 직접 돌며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사를 건넨다.

신입사원은 '귀한 손님'처럼 맞이한다. 이 회장은 "재능 있는 사람은 열심히 하는 사람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겁게 일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며 마음가짐을 강조한다고 전해진다.

그의 관심은 회사 밖 미래 세대에게도 향한다. 세아해암학술장학재단 이사장을 맡아 장학사업을 이끌며 인재 육성에 힘을 쏟아온 이 회장은 장학증서 수여식에도 직접 참석해 학생들을 격려한다. 그가 즐겨 전하는 메세지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고 끈기 있게 도전하는 것"이다.

◇ 가풍에서 비롯된 경영 안정성
국내 강관·특수강 산업을 이끌어온 세아그룹은 재계 50위권의 철강 전문기업집단이다. 그 중심에는 가족의 화합을 기업의 안정으로 잇고, 위기의 순간마다 묵묵히 중심을 지켜온 이순형 회장이 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자신을 수양하고 가정을 바로 세워야 나라와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는 이 가르침은 그의 삶과 경영을 관통하는 철학이기도 하다. 가족 간 신뢰와 화합을 지키는 일이 곧 기업의 뿌리를 단단히 하고, 그룹의 내일을 여는 힘이라는 믿음이다.

세아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종덕 명예회장은 두 아들 이운형·이순형 회장에게 경영수업을 시키면서 중요한 사업을 추진할 때 반드시 가족 간 협의를 거치도록 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가풍은 훗날 세아그룹의 가족 경영체제를 뒷받침하는 토대가 됐다.

이순형 회장은 부친의 뜻을 이어 화합의 가치를 경영에 녹여냈다. 특히 2013년 그룹 회장직에 오른 이후에는 차세대 경영체제를 정비하는 데 힘을 쏟았다. 2세대 형제경영에서 3세대 사촌경영으로 이어지는 세대교체의 물꼬를 튼 것이다.

2018년 세아제강지주 출범을 통한 양대 지주회사 체제 구축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운형 회장의 장남 이태성 사장이 세아홀딩스를 중심으로 특수강 사업을, 이순형 회장의 장남 이주성 사장이 세아제강지주를 중심으로 강관 사업을 이끄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승계 구도를 명확히 해 불필요한 경영 혼란을 줄이고, 후대가 각자의 사업 영역에서 책임경영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전략이다.

한때 형과 함께 그룹의 성장을 이끌고, 홀로 중심을 지켰던 그는 이제 다음 세대가 제 몫을 다할 수 있도록 '든든한 어른' 역할을 하고 있다. 두 사촌형제가 경영 전면에 나선 지금도 이 회장의 존재는 그룹의 안정성을 뒷받침하는 버팀목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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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라 기자
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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