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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 金·龍이 소환한 질문, “왜 최악이 최고의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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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9. 28.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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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龍 낙마, 우리 사회에
'인사 검증 부실' 이외
어떤 경고 담고 있나
김이석고문
김이석 논설고문
최근 이재명 정부 2기 장관 후보자들의 잇단 논란과 낙마 파동을 둘러싸고 언론과 정치권의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정당 국고보조금 관련 의혹 등으로 결국 자진 사퇴했고,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역시 국회의원 시절 관련 파문과 각종 의혹에 휩싸이는 등 주요 인선이 심각한 난항을 겪었다. 언론은 일제히 청와대의 인사 검증 시스템 붕괴를 강하게 질타했다. 전문성과 도덕성 대신 정치적 충성도와 진영 내 지분을 최우선시한 '코드인사', 소수 정당 포섭과 세력 확장을 노린 당파적 야합이 초래한 필연적 참사라는 비판도 쏟아졌다.

이러한 언론의 비판에 따른 인사 검증 장치의 대대적 수술과 정비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비판의 화살을 단지 '부실 검증'이나 '청와대 인사 검증 라인의 무능'에만 머물게 해서는 이번 사태가 던지는 본질적 경고를 놓치기 쉽다. 청문회라는 마지막 문턱에서 부적격자를 걸러내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더 근본적이고 불편한 질문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도덕적 결함과 전문성 부족 논란에 휩싸일 인물들이 어떻게 그 긴 사회적·정치적 사다리를 차곡차곡 올라와 국가의 장관 후보자라는 최고위직 자리까지 다다를 수 있었느냐?"가 바로 그것이다.

이 두 인사의 낙마는 우리에게 80여 년 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명저 '노예의 길' 제10장에서 던졌던 도발적인 질문을 다시 소환한다. 하이에크는 그 장에 "왜 최악의 사람들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가(Why the Worst Get on Top)"라는 섬뜩한 제목을 붙였다. "권력은 부패한다"는 액튼 경의 명언처럼 선량한 사람도 권력을 잡으면 타락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이에크의 통찰은 이보다 훨씬 깊고 서늘하다. 그가 권력이 사람을 나쁘게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권력을 획득하고 승승장구하는 과정 자체가 특정한 인간형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파헤쳤기 때문이다.

그것이 권력자 개인의 망상이든 집단의 허황한 이념 추구이든, 특정한 목표가 개인의 자유와 원칙을 압도하고 진영 간 대립이 격화되는 환경에서는 양심과 도덕성 때문에 주저하는 사람보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 권력자의 눈에 훨씬 유용하게 비친다. "이것이 도덕적으로 옳은가"를 끊임없이 묻는 사람보다는 시키는 일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완수해 내는 인물이 평가를 받는다. 결국 이러한 환경 속 정치권력의 세계에서는 도덕적 거리낌과 양심의 가책이 오히려 치명적인 결격 사유가 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러한 환경에 처한 정치 집단에서는 아무리 중대한 잘못을 저질러도 '우리 편'이라는 이유만으로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 눈높이에서 나오는 평판 비용이 대폭 할인된다. 그런 정치 집단 내부에서는 원칙보다는 충성심이, 겸허한 반성보다는 뻔뻔한 버티기가 훨씬 높은 보상을 받는다. 실제로 그런 모습을 한국 정치에서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시장과 정치의 극명한 차이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시장에서는 잘못된 판단과 나쁜 평판에 대해 손실이나 고객 외면, 파산이라는 직접적이고 엄혹한 대가가 즉각 따라온다. 반면 정치 영역에서는 정책 실패의 엄청난 비용을 납세자가 나눠 짊어지고, 인격적 결함이나 처신의 나쁜 평판마저 진영의 울타리가 단단히 막아준다. 결과적으로 부끄러움을 아는 정직한 사람은 물러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몰염치한 사람은 끝까지 살아남아 승리하는 '이상한 역전'이 일상화된다. 자기편의 잘못을 비판하는 사람은 배신자로 낙인찍혀 쫓겨나고, 무조건 방어하는 전투적 인물은 '충성스러운 동지'로 대접받는 정치 사다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용혜인·김승원 두 장관 후보자의 최종적 낙마는 우리에게 두 가지 상반된 의미를 동시에 던져준다. 우선 국민적 여론과 언론의 검증 장치가 최종적으로 작동하여 이들의 입각을 저지했다는 점은, 우리 사회가 최악의 인사를 저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어 기능을 아직은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다행스러운 증거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자격 미달 인물들이 당당히 여당의 추천을 받고 장관 후보자 자리에까지 올라 임명 직전에까지 다다랐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사회에 심각한 경종을 울린다. 우리 정치와 사회가 하이에크가 경고했던 "최악의 자가 최고의 자리로 출세하는" 위험한 경향성을 강하게 띠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단지 이번 인선의 부실 검증에 분노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어떤 보상 체계와 정치적 사다리가 작동했기에 저런 인물들을 계속해서 최고의 자리로 밀어 올리고 있는지 근본적으로 물어야 한다. 하이에크의 음울한 경고를 가벼이 흘려듣지 말고 우리 사회와 정치 체제에 작동하는 이런 보상구조에 대해 깊은 성찰에 나설 때다.

김이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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