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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차 전당대회 개막식이 열리는 20일 오전 4시, 알람소리에 맞춰 눈을 떴다. 도로 통제도 있는데다 700명 가량의 내·외신 기자들이 몰리는 탓에 프레스센터(취재센터) 자리 잡기가 힘드니 적어도 5시쯤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는 베트남 기자의 귀띔이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다. 오전 5시에 겨우겨우 노트북과 카메라를 챙겨 전당대회가 열리는 하노이 국립컨벤션센터(NCC)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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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30분, 동이 트기도 전이라 깜깜한데도 입구를 지키고 서있는 기동대원들과 방호원들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개인 차량이 없는 탓에 가장 바깥 입구에 내려야 했다. 뚜벅뚜벅 걷는 기자의 옆으로 사전에 등록된 검은 세단과 오토바이 행렬이 줄지어 섰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탑승자는 전원 내려야 했고, 깐깐한 폭발물 검사와 엑스레이(X-Ray) 검색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뒤쪽으론 어둠을 헤치고 공안과 특수부대원들이 오늘의 임무에 나서기 전 밥그릇을 달그락 거리며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보안 검색을 마치고,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대원들과 무섭게 생긴 탐지견 두 마리를 지나 컨벤션센터 본관으로 향했다.
오전 5시 40분, 본관 앞은 이미 장사진이었다. 보안 검색대가 열리길 기다리는 베트남 기자들은 구석에서 담배를 태우거나, 서로 취재 일정을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6시 정각이 되자 드디어 문이 열렸다. 또 한 번의 보안검사를 마치고 게이트를 통과하자, 기자가 목에 건 비표(취재증)가 자동으로 인식됐다. 정면 모니터엔 "짜오믕 동지(환영합니다 동지)"라는 문구와 함께 기자의 얼굴, 이름, 소속 언론사가 떴다. 비(非) 사회주의 국가에서 온 외신기자도 동지로 품어주는 후한 인심이었지만 보안요원들은 날이 바짝 서있었다. 예정보다 일정이 1.5일 단축된 후, 마지막 폐막식날엔 보안요원들도 싱글벙글하고 있었고 흔쾌히 "기념으로 한 장 찍어라"며 엄지를 치켜 세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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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센터 자리잡기는 말 그대로 '오픈런'이었다. 방송·사진 기자들도 제각각 자리 잡기에 정신이 없었고 기자와 같은 펜기자들도 데스크톱이 설치된 자리와 노트북을 펼칠 수 있는 자리를 맡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대회장 안에서는 휴대폰 사용 자체가 불가능했다. 취재센터에도 별도의 와이파이(무선랜)가 없었고 미리 준비해놓은 데스크톱이나 노트북을 사용해야했다. 개인노트북도 허용됐지만 지정된 자리에서 유선랜을 이용해서만 사용이 가능했다. 약 7시부터는 통신이 전면 차단돼 휴대폰도 먹통이 됐다. 그마저도 일부 기자들은 휴대폰을 가져오지 말란 통보를 받아 집이나 차에 놓고 온 경우도 있었다.
이 '철통 보안'은 기자들에게만 적용된 것이 아니었다. 1억의 베트남 국민, 560만 명의 당원을 대표해 모인 1586명의 대의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들은 지정된 호텔에 투숙하며 단체로 움직였다. 하노이에 집이 있어도 귀가는 불허됐다.
눈에 띄는 것은 그들이 받은 삼성 태블릿이었다. 인트라넷만 가능한 이 기기에는 약 1000페이지 분량의 디지털 자료가 담겨 있었다. 종이로 인쇄했더라면 160만 페이지에 달했을 분량이다. 단순 행정편의를 넘어서 전당대회의 핵심 의제 중 하나였던 '국가 디지털 전환'을 대의원들 손끝에서부터 실현하겠다는 상징적인 조치였다. 이 종이 없는 회의는 효율성으로 점철된 이번 당대회의 일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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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제14차 전당대회가 막을 올렸다. 제13차 대회와 확연히 달라진 무대 풍경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5년 전, 지난 대회 때는 무대 단상 앞을 가득 메우며 '단결-민주-기강-창조-발전'이라는 문구를 수놓았던 화려한 꽃장식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알록달록한 치장을 걷어낸 자리엔 붉은 카펫만이 깔려 있었다.
변화는 또 있었다. 무대 한편에 있던 호치민 주석의 흉상은 이번에는 인민을 향해 손을 들고 인사하는 '전신상'으로 무대 정중앙을 차지했다. 카를 마르크스와 레닌의 초상, 그리고 최상단의 '영광스러운 베트남 공산당 만세'라는 문구는 여전했지만, 그 아래의 공기는 달랐다. 꽃은 치우고, 호치민 주석의 전신상을 중앙에 세운 배치. 이는 형식보다는 효율을, 수사보다는 실행을 강조하는 럼 서기장의 성격이 무대에도 그대로 투영된 듯했다.
이날 럼 서기장은 전례를 깨고 정치보고·경제사회보고·당 건설 보고 등 3대 보고서를 하나로 통합한 정치보고서를 직접 낭독했다. 그의 입에서는 "연평균 GDP(국내총생산) 10% 성장"이라는 파격적인 목표가 터져 나왔다. 지난 임기 목표(6.5~7%)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중진국 함정'을 돌파해 2030년까지 중진국 상위권, 2045년 건국 100주년에는 고소득 선진국으로 진입하겠다는 '민족 도약'의 청사진이 낭독됐다. 르엉 끄엉 국가주석의 개막 연설 직후 이어진 그의 속전속결 진행 덕에 당초 25일까지 예정됐던 전당대회도 1.5일을 단축해 23일 마무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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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벌한 보안 속에서도 '먹는 즐거움'은 있었다. 공산당은 기자들에게 삼시 세끼 뷔페식 식사를 제공했다. 식권을 내고 들어선 식당에서 베트남 기자들과 "당에서 주는 쌀국수와 커피"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이번이 세 번째 취재라는 한 베테랑 기자는 "전당대회 기간에는 잘 먹어서 2~3kg는 찐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기자실 밖에도 과일과 빵이 마련돼 기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티타임을 즐겼다. 몇몇 베트남 언론들이 외국기자들을 붙잡고 당대회와 프레스센터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하고 있었다. 대부분 러시아·라오스·쿠바·모잠비크 등 우방국 기자들이었다. 달라진 베트남의 위상, 내외신기자들을 불러다 현대적인 시설에서 넉넉히 대접을 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베트남의 자신감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취재를 마치면 당이 준 쌀국수와 밥은 다시 도루묵이 됐다. 통신 차단이 풀리지 않아 그랩(Grab)도 택시도 호출할 수 없었다. 경비를 서던 기동대원은 무심하게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켰다. "2~3km는 걸어 나가야 휴대전화가 터질 겁니다."
결국 노트북과 카메라를 짊어지고 오토바이 매연을 마시며 30분 가까이 걷자 그제서야 메일과 문자 알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전당대회가 열린 국립컨벤션센터(NCC)에는 한국 교민들도 많이 사는 아파트가 하나 있었다. 이 곳에 사는 기자들의 지인들도 전당대회 기간 인터넷과 통신이 먹통이 되는 시간대에는 연락이 두절되거나 20~30분 걸어 나가는 고생을 해야했다. 전당대회가 예정보다 1.5일 단축됐을 때 당대회를 취재하던 기자들과 이 아파트 주민들이 베트남에서 그 누구보다 가장 기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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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막일인 23일, 분위기는 한결 여유로웠다. 전날인 22일 중앙집행위원(중앙위) 선출 결과가 공표됐는데 이 역시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고 사실상 럼 서기장의 연임을 예고한 탓이다. 기자 역시 결과 공표 직후 럼 서기장의 연임이 사실상 확정됐다는 기사를 송고했기에 23일 오전은 여유로웠다.
23일 오전엔 1300여 명의 대표단은 쉬고, 전날 선출된 중앙위의 위원 180명만 공산당 중앙당사에서 제1차 전원회의를 가졌다. 여기서 서기장을 선출하고 오후에 다시 모든 대표단이 국립컨벤션센터로 모여 폐막식을 치른다. 국가주석·총리·국회의장 등은 전당대회 때 정하지 않고 차후 2차 전원회의와 국회의원 선거 이후 새 국회가 4월께 선출 및 승인하게 된다. 하지만 폐막식날 공표되는 정치국원과 이후 이어질 기자회견장에서의 배석을 통해 차기 베트남 지도부의 윤곽을 가늠할 수 있다.
신임 서기장의 기자회견이 이뤄질 기자회견장에 미리 자리를 맡아놓은 후엔 이 기자 저 기자를 만나 수다를 떠는 것이 전부였다. 이미 럼 서기장의 연임이 사실상 확정됐기 때문이다. 외신기자들이나 베트남기자들이나 "어차피 다시 럼 서기장이다", "이렇게 결과 예측이 쉬웠던 전당대회는 처음"이란 분위기였다. 그만큼 럼 서기장이 권력기반을 공고히 다져놨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폐막식에는 예상했던 이름들이 불렸고, 이후 이어진 기자회견에서도 예상했던대로 좌석 배치가 이어졌다. 기자회견장에선 폐막식이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또 럼 서기장이란 이름이 인쇄된 명패를 갖다놨다가 기자들이 사진을 찍자 다시 빼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폐막식에선 중앙집행위의 회의 결과와 서기장과 주요 지도부 선출 결과를 발표하는데 이 공식발표가 이뤄지기 전에 이미 결과를 내보인 셈이 됐다.로이터가 이 명패 해프닝때 럼 서기장의 연임이 확인됐다는 기사를 먼저 냈다.
폐막식 이후 럼 서기장은 주요 인사들과 함께 내외신 기자회견을 직접 주재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사전조율 같은 각본 없이 즉석에서 일문일답을 했지만 베트남은 아직 그렇지는 않았다. 그래도 원론적인 당의 입장을 설파하기 보다는 보다 직관적이고 단호한 언어를 구사하는 그에게서 실행력을 중시하는 거침없는 성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결의안은 훌륭했지만 실행이 약했다"고 자평하며 모든 정책에 마감 기한과 책임자를 명시하는 책임 행정을 도입하겠다고 천명했다. 10% 성장과 조직 혁명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안고 출범하는 또 럼 2기의 첫 약속이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기사를 마무리하니 그 사이 통신차단이 완전히 풀렸다. 드디어 입구에서 차를 타고 편하게 갈 수 있겠구나 기뻤지만 놓였지만 웬걸, 퇴근시간이 겹친데다 폐막식 기념 불꽃놀이가 예정되어 있단 소식에 20분이 넘도록 그랩도 택시도 잡을 수 없었다. 결국 또 30분을 걸어 저녁을 먹고 일을 좀 더 하다 겨우겨우 차를 잡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추워서 자켓 안에 패딩조끼까지 입고, 자켓 위에 또 패딩을 입고 나간 하루였건만 전당대회를 축하하는 하노이 밤의 열기는 무척이나 뜨거웠다. 폭죽이 터지는 소리에 흔들리던 아파트 창문은 또 몇 시간 후 U-23 아시안컵에서 사상 처음으로 베트남이 한국을 꺾고 동메달을 확보한 탓에 열광하는 시민들의 함성으로 다시 흔들렸다. 확실히 여러모로 베트남은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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