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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 ‘프로보노’ 국회의원을 갈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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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1. 1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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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논설심의실장
모 금융지주 회장실. 방문객과 얘기를 나누던 회장은 걸려 온 휴대전화를 신속하게 받았다. 1분 정도의 짧은 통화가 마무리됐다. 마지막 말은 "그렇게 하겠습니다"였다. 전화를 건 사람은 국회의원 보좌진. 대화 중 또다시 휴대전화가 떨렸다. 즉각 받았다. '윗사람' 전화인 듯 매우 공손했다. 마지막 말도 이랬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는 국회의원이었다. 회장은 푸념했다. "여의도 눈치 보느라 일이 안 됩니다. 수시로 민원이 들어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에 부르겠다는데…."

적잖이 시간이 흐른 요즘 이런 상황은 어떻게 변했을까. 변함이 없다고 장담한다. 최근 언론을 통해 드러난 일부 국회의원의 일탈을 보면 확신이 든다. 여당 전 원내대표가 보여준 일그러진 모습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 허탈함을 던져준다. 국회의원 '공천헌금'을 둘러싼 현직 국회의원의 비리 의혹도 목격하고 있다. 재직 시 젊은 보좌진에게 차마 듣기 어려울 수준의 폭언을 쏟아낸 전직 국회의원 사례도 접하고 있다.

그래서 '프로보노'를 떠올렸다. 프로보노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무료 봉사'라는 의미다. 라틴어 '공익을 위하여(pro bono publico)'의 약어다. 변호사가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무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다. 최근 들어서는 전문 분야 종사자들이 공익을 위해 자신의 전문 지식이나 기술을 무료로 제공하는 활동으로 확대됐다. 공공 이익을 위한 일이 바로 프로보노 활동이다.

우리 변호사들은 2001년 개정 변호사법에 따라 연간 20시간의 공익 활동을 의무적으로 하도록 돼 있다. 형식과 실질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파악할 길이 없지만, 변호사들이 프로보노를 실천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우리 국회의원들이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하고 프로보노의 자세로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마음을 굳게 갖고 있다면 금융지주사와 병원, 병무청, 구의회 등에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 없이 민원을 제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과 가족, 관계자의 이익을 위해 남의 이익을 훼손하는 행위도 하지 않을 것이다. 병원 진료 순서를 앞당겨 달라는, 민원 같지 않은 민원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 돈을 지닌 자의 편의를 빙자한 일탈은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만 예외가 아닐 것이다. 전 세계 공통일 테다.

우리 국회의원이 프로보노의 정신으로 입법 활동을 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바로 지나치게 과도한 혜택 아닐까. 국회의원 당선 후 받는 혜택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얼마나 많은 혜택을 입법 활동 보조라면서 지원을 받는지는 웬만한 국민이라면 다 안다. 그것도 우리의 세금으로 말이다.

일부라고 하지만 국회의원의 일탈을 보면, 프로보노 정신을 지닌 국회의원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 자료를 찾고 지역구 주민을 만나 입법 자료를 만들어가느라 밤을 지새우는, 공익을 위해 물불 안 가리는 그런 국회의원 말이다. 스웨덴 등 서구 복지국가 국회의원들은 사실상 자원봉사 수준에서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있지 않은가.

다수 국회의원이 한 명의 보좌진을 공동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의사당에 침낭을 깔고 밤낮 일하면서 박봉인 급여를 받으면서 일한다. 이유는 단 하나, 역사에 길이 남는 입법의 보람 때문이다.

우리 국회의원은 지금 세금 기반 입법 활동 혜택이 과도하지 않은지 스스로 묻고 대답해야 한다. 아울러 보좌진 규모가 적당한지도 냉정하게 들여다보기를 권한다.

혜택은 상대방이 없으니 마음만 먹으면 스스로 줄이기 쉽다. 하지만 보좌진은 얘기가 다르다. 극소수이거나 공동 보좌진을 활용하면 국회의원이나 보좌진이 과연 국회 상임위원회 소관 부처나 산하 기관 등에 시도 때도 없이 개인 차원의 민원을 할 수 있을까. 그럴 마음의 여유나 시간이 있을까. 1명의 보좌진이 연간 10건의 민원을 제기한다고 가정하면, 8명은 80건의 민원을 제기하게 된다. 단순한 일반화일 수 있지만, 절대 틀리지 않을 것이다.

기업 대관(對官) 담당 직원이 얼마나 많은지는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일으킨 쿠팡의 예를 보면 안다. 보좌진 일자리를 챙겨줘야 하는 국회의원의 부담은 절대 가볍지 않다. 쿠팡에는 유달리 많은 국회의원 보좌진이 포진하고 있다. 여타 공공기관이나 대기업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자리를 챙겨주지 못하거나 민원을 제대로 해결해 주지 못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원과 보좌진의 알력은 늘 일어나기 마련이다. 뒤늦게 알려지는 국회의원의 부정과 비리, 일탈은 주로 보좌진 제보에서 비롯되고 있지 않은가.

국회의원은 정치를 통해 나라와 국민을 섬기는 전문인이다. 우리 국회의원이 국가의 발전과 민족의 부흥에 도움이 되는 입법 활동을 명예로 여겨 쉴 틈 없이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국회의원은 법을 제정하는 막강한 힘을 갖고 있기에 사회적 영향력이 막대하다.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다른 직종보다 뛰어난 프로보노의 정신이 절실하다. 프로보노 정신이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휘돌아 감싸는 날을 속히 보고 싶다.

이경욱 논설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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