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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서해 공무원 피격’ 서훈·박지원 고소 취하 논란…정치와 ‘헤어질 결심’ 못한 국가 최고 정보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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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준 기자 | 김홍찬 기자

승인 : 2025. 12. 29. 18:18

국정원, 역대 원장 16명 중 10명 기소
서훈·박지원 고발 취하…"과오 반성"
"대통령·정부 구체적 지시 제한해야"
임기제 도입·'정보맨' 중용 목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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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국정원)이 29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서훈·박지원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고발을 취하했다. 국정원은 "해당 재판들은 윤석열 정부 당시 국정원이 자체 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2022년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과 박지원 의원을 대검찰청에 고발하면서 시작됐다"면서 "현 정부 출범 이후 실시한 특별감사와 감찰을 통해 사건 관계자들의 직무행위에 범죄 혐의가 있다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사실에 반하여 고발 내용을 구성하거나 법리를 무리하게 적용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지난 정부에서 행해진 자신들의 '흑역사'를 사과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흑역사'의 기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고 있다. 3년 전 윤 정부의 국정원은 같은 사건에 대한 첩보 관련 보고서 무단 삭제 혐의, 합동조사 강제 조기 종료 혐의 등으로 박 전 원장과 서 전 원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마찬가지로 전 정부인 문재인 정부 국정원의 '비위'를 들춰내기 위한 조치였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과오'를 '반성'하다가, 정권이 바뀌면 '반성'이 '과오'가 되는 모습이다. 특히 정권의 방향성과 유사하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외치던 문 정부의 국정원은 북한과 연관된 사건을 덮으려 했다는 의혹에 휩싸였고, '억지력 회복'을 주장하던 윤 정부의 국정원은 이를 불법 행위로 규정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재집권한 이재명 정부의 국정원은 다시 이 결정을 '정치적 행위'로 판단하고 이례적으로 '사과'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정보기관이 정부의 방향성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정보의 정치화'라고 비판하고 있다.

정권과의 유착은 '국정원장 리스크'로 이어졌다. 국정원이 지금의 이름으로 바뀐 1999년 이후 거쳐간 16명의 원장(현 이종석 원장 제외) 가운데 10명이 기소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6명이 유죄를 선고받았으며, 직전 수장이었던 조태용 전 원장은 12·3 비상계엄 선포를 국회에 미리 보고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 모두 정권의 지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아시아투데이는 국정원의 위상과 역할을 다시 한번 살펴봤다. 전문가들은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국민을 위해' 사용하기 위해서는 국정원의 '정치적 독립'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보 활동에 대한 정치 개입 최소화

가장 먼저 정보의 정치화를 막기 위해 국정원 업무에 대한 대통령과 정부의 '구체적 지시'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과거부터 정권의 정책 추진을 위해 필요한 각종 업무를 도맡아 정책 입안에 '관여'하는 기관으로 작동한 문제점을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정보를 수집해 정책 결정 부서에 전달하는 정책 지원 기관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다.

대책으로 '검찰 모델'이 거론된다. 행정부 소속이지만 개별 사건에 대한 상위기관의 지휘를 받지 않는 구조다. 수사와 기소 등 업무 수행 권한을 모두 내부 판단에 맡기는 방식이다. 독립의 범위와 통제 방식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조지훈 법무법인 다산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총장)는 "대통령의 지시는 일반적 정책에 한정하고 개별 사안이나 작전(공작)에 관한 지시는 금지 또는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며 "외부적 통제를 위해 국회 소속 전문가 감독기구와 정보감찰관 신설 같은 설계도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원장 임기제 도입

정보기관의 정치적 중립성과 업무 연속성을 강화하기 위해 원장의 임기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제시된다. 현재 국정원장은 법적으로 임기를 보장받지 않는다. 역대 원장 16명의 평균 임기는 '1년 8개월'에 불과하다. 이는 정권 교체 시 이전 정부의 정보기관 활동이 정치적 논쟁으로 이어지거나 인원이 대거 물갈이되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해 왔다.

따라서 정보 판단의 정치적 왜곡을 줄이기 위해 원장의 임기를 법적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배정석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 교수는 "열심히 해봤자 정권이 바뀌면 그 사람부터 물갈이되는데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겠냐"며 "죽은 정보기관이 되는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국정원은 5~10년, 길게는 20년짜리 장기 사업을 하는 기관인데 임기가 짧은 원장은 근시안적인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임기제를 당장 도입할 수 없더라도 단기 임기나 중임제 등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정원장에 '정보맨' 중용

마지막으로 국가 정보 업무의 전문가, 이른바 '정보맨'을 국정원장에 임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외부와 단절돼 있고, 내부적으로도 부서 간 차단의 원칙을 갖고 있는 국정원의 특성상 전체를 조율하는 원장의 역량이 기관의 능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진보·보수 정권에서 모두 근무하며 7년간 활동한 조지 테넷 전 CIA(미국 중앙정보국) 국장의 사례가 언급된다. 테넷 전 국장은 미 상원의회 정보위원회와 국가안보회의 등 정보관계 요직을 거쳐 CIA 국장에 오른 인물이다. 풍부한 정보기관 운영 경험과 정보 분석·정책 연결 능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았고, 클린턴 행정부에서 임명돼 정권 교체로 들어선 부시 행정부에서도 국장으로 활약했다. 테넷 전 국장은 당시 정보기관 수장의 자격으로 '지적 능력, 통찰력, 대통령의 신임, 인격'을 들기도 했다.

조경환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 "국정원이 원장 리스크에 시달린 지 20년이 넘었다. 무능과 무기력, 무책임이 스며들은 것"이라며 "국정원장은 국정원에 대한 문제의식과 진단, 비전과 플랜을 가진 전문 분석가나 지식인이 임명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최민준 기자
김홍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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