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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대중적 확장,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확인한 ‘공감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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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승인 : 2025. 12. 28. 08:49

실험성부터 대중성까지 아우른 기획력, 세대와 지역을 잇는 문화 플랫폼
김아영·‘애호가의 편지’·료지 이케다로 이어진 전시 성과, 개관 10주년의 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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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와 아시아 대중음악을 참여형 전시로 풀어낸 '애호가의 편지' 전시 전경.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문화 현장에서 '10만 관람객'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흥행 성과를 넘어선다. 그것은 한 공간이 동시대의 감각과 얼마나 깊게 호흡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자, 예술이 특정 집단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는 순간을 가늠하게 하는 단서다. 올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선보인 주요 전시 세 종이 각각 누적 관람객 10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은, 지역 문화기관의 성과라는 범주를 넘어 한국 미술계 전반의 흐름을 읽게 한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아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아우르는 전시를 연속적으로 선보였다. 그 결과는 수치로 명확히 드러났다. 지난 2월 막을 내린 'ACC 미래상: 김아영-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는 10만 명을 훌쩍 넘긴 10만 1천여 명의 관람객을 기록했고, 여름까지 이어진 '애호가의 편지' 역시 13만 명이 넘는 발길을 전시장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7월 개막한 'ACC 포커스-료지 이케다' 전시는 지난 16일 기준 누적 관람객 10만 명을 넘어서며, 올해 ACC 전시 성과의 방점을 찍었다.

이 성과가 의미 있는 이유는 세 전시가 다루는 주제와 형식이 서로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의 미학이나 장르에 기대지 않고, 서로 다른 감각의 전시들이 고르게 관객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은 ACC의 전시 기획이 특정 취향에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동시대 미술의 실험성, 대중문화의 기억, 미디어 기술의 극단적 확장이라는 서로 다른 결들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공존하며 관람 경험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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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가의 편지' 전시장 내부 모습. 아시아 4개국의 대중음악 자료와 미디어 설치가 결합된 공간이다.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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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 포커스-료지 이케다' 전시 전경. 대규모 미디어 설치 작품이 관람객의 몰입을 이끈다. /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가장 먼저 관람객 10만 명을 넘어선 'ACC 미래상: 김아영-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는 동시대 사회의 구조와 노동의 풍경을 서사적으로 풀어낸 전시였다. 김아영은 플랫폼 노동과 도시의 리듬, 가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지점을 영상과 설치 작업으로 촘촘히 직조했다. 이 전시는 이후 '2025 월간미술대상'에서 전시기획 부문 우수 전시로 선정됐고, 관람객이 직접 뽑은 '화제의 전시 TOP5'에서도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전문가 집단의 평가와 대중의 선택이 동시에 만난 사례라는 점에서, ACC 미래상이 지향하는 전시 모델을 분명하게 각인시켰다. 전시를 계기로 김아영 작가는 '아트리뷰 파워 100' 순위가 77위로 상승하며 미술계에서의 존재감을 한층 분명히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변화는 이번 성과가 일회성 흥행에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어진 '애호가의 편지'는 결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관객과 만났다. 트로트와 아시아 뽕짝이라는 대중음악의 기억을 참여형 기술과 매체로 풀어낸 이 전시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여러 지역의 대중음악 아카이브를 전시장 안으로 끌어들였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얀마, 베트남 등 아시아 4개국의 음악 자료가 함께 소개되며, 노래가 개인의 추억을 넘어 집단의 감정과 시대의 풍경을 어떻게 품어왔는지를 자연스럽게 환기했다. 세대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관객의 공감을 얻었다는 평가는, 이 전시가 향수에 기대지 않고 현재의 감각으로 과거를 재해석하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13만 명이 넘는 관람객 수치는, 대중문화가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공간 안에서도 충분히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음을 증명한 결과였다.

올해 ACC 전시의 정점을 이루는 'ACC 포커스-료지 이케다'는 규모와 밀도 면에서 또 다른 방향의 실험이었다. 사운드 아트와 데이터 미학의 거장 료지 이케다의 국내 최초 대규모 개인전은 약 540평에 달하는 공간에서 펼쳐지며, 관람객을 압도적인 몰입의 장으로 이끈다. 작가가 20여 년간 축적해온 연구와 기술적 실험의 정수가 담긴 'data-verse1/2/3' 연작을 아시아 최초로 소개하고, ACC의 제작 지원으로 완성된 신작 네 점을 함께 선보였다는 점에서, 이 전시는 단순한 초청 전시를 넘어 제작 단계에서부터의 협업이 강조된 사례로 볼 수 있다.

관람객 만족도 조사에서 수도권 관람객 비중이 23퍼센트에 달했다는 결과는 인상적이다. 특정 지역에 위치한 문화시설이라는 물리적 조건을 넘어, 전시 자체가 이동의 이유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이는 이케다의 국제적 인지도와 더불어, 초대형 미디어 설치가 만들어내는 감각적 경험이 관람객의 선택을 이끌었다는 점을 방증한다. 전시장은 단순히 작품을 '보는' 공간이 아니라, 데이터와 소리, 빛의 파동 속에 몸을 맡기는 체험의 장으로 기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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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 포커스-료지 이케다' 전시 10만 번째 관람객 기념 행사에서 박승오·이자현 씨 부부가 꽃다발을 전달받고 있다. /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는 이러한 성과를 기념하며 'ACC 포커스-료지 이케다' 전시의 10만 번째 관람객을 위한 기념 행사를 마련했다. 전시장을 찾은 박승오, 이자현 씨 부부가 그 주인공으로, 이들은 다양한 전시를 통해 문화적 식견을 넓힐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앞으로 선보일 전시에 대한 기대감을 전했다.

눈여겨볼 점은, 올해 성과가 특정 전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9월 개막한 'ACC 개관 10주년 기념 특별전시-봄의 선언' 역시 8만 5천 명을 넘는 관람객을 기록하며, 조만간 10만 명 돌파가 가능할 것으로 ACC는 보고 있다. 이는 ACC의 전시 전략이 단발성 흥행 카드가 아니라, 장기적 기획의 연속선 위에 놓여 있음을 시사한다.

김상욱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장은 올해 성과를 두고, 세계적인 아시아 작가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소개를 통해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의 발언은 ACC가 단순히 전시를 많이 여는 공간이 아니라, 아시아 문화 예술을 매개로 세계와 소통하는 창이 되고자 한다는 방향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세 전시의 누적 관람객 10만 명 돌파는, 숫자만 놓고 보면 화려한 기록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서로 다른 질문과 감각을 품은 전시들이 관객 각자의 삶과 만난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다. ACC의 올해는 그렇게, 예술이 어떻게 사람들의 일상으로 스며들 수 있는지를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증명한 시간으로 남는다.
전형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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