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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감사’ 손 뗀 감사원… “견제 기능·중립성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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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준 기자

승인 : 2025. 12. 17. 18:04

李 언급 5개월만 규칙개정안 시행
"본연의 회계검사·직무감찰 충실"
율곡사업 메스·전두환 서면조사 등
'긴장관계' 과거정권과 상반된 행보
감사원. /연합
감사원이 '정책 감사 폐지'를 공식적으로 확정하고 내부 규칙을 개정했다. 앞으로 불법·부패 행위가 아니면 정부의 중요 정책결정에 대한 감사를 아예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재명 대통령이 '정책 감사가 공직자 의욕을 꺾는다'고 언급한 지 5개월 만이다.

정부·여당의 방향에 맞춰 기존 시스템을 뿌리째 뽑아내는 감사원의 '홍위병식 개혁'에 기관 본연의 견제 기능과 중립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감사원은 17일 "정부의 중요 정책결정에 대한 감사 폐지 원칙을 반영한 '감사원 감사사무 처리규칙' 개정안을 지난 12일 시행했다"고 밝혔다. 해당 결정은 지난 3일 감사위원회의를 통해 의결됐다.

이번 개정에 따라 '정책결정의 기초가 된 사실판단', '자료·정보 등의 오류', '정책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의 적정 여부',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적법성', '절차 준수 여부'가 감찰 대상에서 제외된다.

앞으로 정부 정책 결정에 대한 판단과 근거의 오류, 수단의 적정성 등에 대해 감사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감사원은 이에 대해 "단서조항을 감사결과 조치가 필수적인 '불법·부패행위'로 과감히 축소했다"며 "헌법과 감사원법에 따른 본연의 회계검사·직무감찰 임무에 충실하면서 정책의 성과·효율성 향상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또 "공직사회를 경직시키는 과도한 정책감사 논란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과감한 축소'가 정책 결정의 부정과 오판을 걸러낼 사전 견제 기능을 잃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판단 오류나 근거 자료의 왜곡, 수단 선택의 부적절성은 불법이나 부패로 귀결되지 않더라도 막대한 재정 손실과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은 흐려지고 행정 전반의 학습과 개선 기회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기능 자체를 축소시키는 것이 '만능열쇠'는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원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합법성뿐 아니라 합리성과 타당성에 대한 점검이 병행될 때 정책 품질은 높아지고 국민에 대한 책임성도 강화된다"며 "감사원의 역할은 정책 집행을 위축시키는 게 아니라 제도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데 있다"고 꼬집었다.

더욱이 이번 결정은 이 대통령의 정책 감사 관련 발언 이후 5개월 만에 내려졌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정책 감사·수사 이런 명목으로 공직자들을 괴롭혀서 의욕을 꺾는 일이 절대로 없도록 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지난달에는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감사원 정책 감사 폐지' 계획을 공개하기도 했다. 감사원 역시 이에 맞춰 정책 감사 폐지 입장을 내놨고, 이를 공식화했다. 정부가 정한 방향대로 움직여온 것이다.

과거 '정권에 충성하지 않는' 감사원의 모습과 상반되는 행보다. 김영삼 정부 당시 감사원은 청와대 비서실을 상대로 한 대대적인 감사로 권력의 핵심부를 정면으로 겨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성역'으로 여겨지던 율곡사업에도 메스를 들이댔고, 평화의댐 비리 의혹과 관련해서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서면 조사하는 초유의 조치에 나서며 주저 없는 행보를 보였다.

참여정부 당시엔 청와대 수석급 인사들까지 연루된 '행담도 개발 비리 사건'에 대한 감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감사원이 정권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독립적 지위를 지킨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정부·여당의 입맛에 맞게 역할을 축소시키는 감사원식 '셀프 개혁'이 스스로 견제 기능과 중립성을 잃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에 감사원 관계자는 "정치적 가치 판단 영역에 해당하는 정책결정 행위 자체에 대해서 더 신중히 접근하겠다는 취지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의 부패·비리 행위에 대한 엄단과 정책사업의 성과·효율성 제고를 위한 감사는 감사원의 헌법상 책무로,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수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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