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언어와 따뜻한 현실감으로 이어온 15년의 여정
|
작품은 드라마 작가를 꿈꾸며 상경한 정은과 자신만의 집을 짓고 싶어 독립한 건축학도 경민이 우연히 한집살이를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사 먼저 한 여자와 계약 먼저 한 남자의 어쩌다 한집'이라는 설정은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도시 청춘의 생활감과 현실의 무게가 녹아 있다. 좁은 옥탑방 안에서 부딪히고, 싸우고, 화해하는 두 사람의 관계는 결국 '사랑'보다 '공존'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단순한 연애담을 넘어,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유쾌하게 묻는 연극이다.
공연의 시작은 밝고 경쾌하다. 무대 위 인물들이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며 '뭉치'를 찾는 장면은, 이 작품이 가진 친밀한 호흡을 상징한다. 관객이 무대의 일부로 편입되는 순간, 현실과 극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바로 이 지점이 '옥탑방 고양이'를 15년간 오픈런으로 지탱하게 만든 힘이다. 배우들은 관객의 반응에 따라 호흡을 달리하고, 장면의 온도는 매 회차 새롭게 조율된다. 정형화된 무대보다 '함께 만들어가는 시간'에 초점을 둔 구성은, 관객에게 매번 다른 감정선을 경험하게 한다.
무대는 소박하다. 그러나 그 한정된 공간이야말로 이 연극의 세계를 완성하는 무대장치다. 배우의 동선과 조명의 변화만으로도 옥탑은 하루의 시간대를, 인물의 감정 변화를 드러낸다. 이 단순한 무대미학은 '생활극'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현실의 질감을 살려내며, 인물의 감정에 집중할 여백을 만든다. 화려한 장치보다 일상의 세부를 통해 감정을 직조하는 방식은 이 작품이 오랜 시간 관객에게 피로감 없이 다가올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
|
이야기의 중심에는 '공간'이 있다. 옥탑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두 인물이 부딪히고 화해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감정의 실험실이다. 낮에는 햇살이 뜨겁고 밤에는 바람이 차가운 그 공간은 도시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배우들의 몸짓과 시선이 만들어내는 움직임, 조명이 그려내는 미묘한 명암의 차이는 무대에 생생한 리얼리티를 부여한다. 좁지만 따뜻한, 낡았지만 살아 있는 이 옥탑의 풍경은 관객에게 '누구나 한때 머물렀던 청춘의 공간'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시즌 무대는 네 배우의 호흡으로 완성된다. 윤봄은 정은의 복잡한 감정을 세밀하게 직조하며, 현실과 이상 사이를 오가는 인물의 결을 단단히 지탱했다. 대사의 리듬과 시선의 온도가 일상에 가까워, 작은 방 안의 숨결이 관객에게까지 전해진다. 곽근영은 경민의 내면을 안정된 호흡으로 그려내며 서사의 중심을 지켰고, 정유정은 겨양이의 활력을 생동감 있게 표현해 극의 리듬을 끌어올렸다. 성보람은 특유의 타이밍과 표정 연기로 유머와 여유를 더하며 무대를 부드럽게 풀어냈다. 네 배우의 호흡이 만들어낸 균형은 이 작품이 오랜 시간 사랑받을 수 있었던 '생활극의 힘'을 다시금 증명한다.
'옥탑방 고양이'의 배우들은 그 세월 동안 세대교체를 반복하며 무대를 이어왔다. 황보라, 이동하, 박은석, 김선호 등 지금은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활약 중인 배우들이 이 무대를 거쳐 갔고, 현재도 30차 라인업의 신·구 배우들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이처럼 한 작품이 세대를 넘어 배우의 성장기를 품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공연계에서도 드문 사례다. 관객에게는 '첫 연극'으로, 배우에게는 경험을 축적하는 현장으로 자리한 '옥탑방 고양이'는 단순한 스테디셀러가 아니라 대학로 연극 생태계의 순환 구조를 상징하는 작품이었다.
|
|
연극은 시대와 함께 성장했다. 2010년 대한민국 국회대상 문화 부문 특별상 수상,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0년 연속 연극 예매율 1위, 그리고 유기묘 지원 캠페인 '겨양아 사랑해'로 이어진 사회공헌 활동까지. '옥탑방 고양이'의 궤적은 한 작품이 사회와 소통하는 방식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고양이'라는 상징이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따뜻함과 책임감을 상기시키는 메타포로 작용한 셈이다.
이번 '더 라스트 시즌'은 지난 15년의 역사를 정리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감수성을 반영한 전환점이기도 하다. 제작사 레드앤블루는 "15년간 축적된 관객 의견과 무대 경험을 토대로 작품의 리뉴얼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기존의 감동을 유지하되, 변화된 세대의 정서와 도시의 풍경을 담아내겠다는 뜻이다. 단순한 종착점이 아닌, 새로운 출발을 위한 숨 고르기다.
'옥탑방 고양이'가 대학로에 남긴 의미는 단순히 흥행의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다. 그 시간 동안 이 무대를 찾은 관객들에게 이 작품은 하나의 기억이자 풍경이었다. 처음으로 연극을 본 날의 설렘, 대학로 골목의 향기, 소박한 무대에서 느낀 진심 같은 것들이 모두 그 안에 있다. 그래서 이 마지막 시즌은 '작별'이라기보다 '감사의 인사'에 가깝다. 웃음과 눈물이 함께 쌓인 그 무대 위에서, 연극은 여전히 오늘의 관객에게 말을 건다.
15년의 시간은 하나의 기록이 되었고, 그 기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옥탑방 고양이'는 여전히 대학로의 불빛 속에서 관객을 맞이하며, 새로운 시대의 감수성을 입은 무대로 나아가고 있다. 청춘의 일상과 도시의 풍경, 사람 사이의 미묘한 거리와 온기. 그 모든 것이 이 연극의 또 다른 제목이다. '더 라스트 시즌'은 끝을 향한 이름이 아니라, 다음 시간을 준비하는 또 하나의 시작점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