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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엽의 법과 경제] 삼권분립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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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9. 15. 17:47

지인엽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삼권분립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삼권분립 논쟁은 윤석열 정부부터 이어져 왔다. 윤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열 차례 넘는 거부권 행사로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뒤를 이은 이재명 대통령은 '삼권분립에도 서열이 있다'는 발언으로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정부 예산도 마찬가지다. 예산안 '자동부의제' 폐지와 정부 '증액 동의권' 제한이 다시 추진되고 있다. 두 제도는 행정부의 예산 편성권을 국회의 과도한 개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로, 삼권분립 원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동부의제는 국회가 기한 내에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정부 원안이 자동으로 본회의에 상정되는 제도다. 과거 국회의 지연 심사로 정부 운영에 차질이 반복되자 이를 막기 위해 10여 년 전 도입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시절 이 제도의 폐지를 추진해 국회를 통과시켰지만, 당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됐다. 증액 동의권은 헌법과 국가재정법에 근거한 원칙으로, 국회가 정부 동의 없이 예산 항목을 증액하거나 신규로 설치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 권한을 제한해 '재정주권을 회복하겠다'고 주장한다. 증액 동의권을 손대려면 개헌이 필요하니, 국가재정법을 개정해 세부사업을 그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것이다. 쉽게 말해, 세부사업 예산은 정부 동의 없이 국회가 증액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주장이다.

두 대통령의 사례와 현재 여당의 행보가 논쟁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삼권분립이 민주주의의 근간이자 권력 남용을 막는 정치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삼권분립은 정치적 가치뿐 아니라 경제적 가치도 지닌다. 경제학적으로 삼권분립은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력기관의 지대추구(노력이나 생산 활동 없이 권력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행위)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연구는 권력 간 견제와 균형이 특정 집단의 지대추구를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환기한 바 있다. 이들은 부패 문제와 정치적 불안이 끊이지 않는 페루,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 왜 '해결사'형 대통령이 등장했는지에 주목했다. 그리고 기득권층의 로비로 의회의 지대추구가 과도해지면, 유권자들이 의회를 해산하는 대통령을 재선출하거나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부패나 불평등이 심화되거나 특정 기관이 권력을 독점하면, 국민은 삼권분립의 한 축을 담당하는 기관이나 개인에게 권력을 몰아주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유인에 직면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 연구 결과를 보면 삼권분립이라는 설계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도록 감시·감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견제와 균형 효과는 경제 전반에도 나타날 수 있다. 견제와 균형은 권력의 지대추구를 방지하여 사회 후생과 기업 활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예를 들어, 견제와 균형이 불안정한 국가일수록 기업의 투자와 고용 창출이 위축된다고 보고되었다. 단일 정당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장악한 단일정부 체제에서는 평균 투자율이 3~4%가량 낮았다.

또 분할정부에서 단일정부로 전환되면 일자리 창출률이 감소했고, 반대로 단일정부에서 분할정부로 전환되면 증가하는 경향이 확인됐다. 견제와 균형이 경제 주체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촉진하지만, 권력이 집중되면 정책 불확실성이 커져 경제활동이 침체한다는 말이다. 삼권분립 훼손은 경제안보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정부 예산은 국가 운영의 핵심이자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공공 자원이다. 예산 삼권분립은 국회의원들의 쪽지예산이나 행정부의 예산편성독점 같은 지대추구를 막아주는 제도적 안전망이다. 자동부의제의 경우,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국회의 예산 심사시간이 부족하다는 운영 경험을 지적하며 폐지하자는 주장도 있어서 일부 조정은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예를 들어,'협의 제도화 장치'로서의 자동부의제와 증액 동의권과 항목·사업의 명확화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정치 제도로서 삼권분립은 우리의 일자리, 자산, 생활과 직결된 '먹사니즘'이기도 하다는 점을 몰각해서는 안 된다. 견제와 균형의 약화는 경제 후생을 훼손할 수 있으므로 지금의 삼권분립 논쟁이 또 하나의 신속입법 대 입법폭주 대결구도로 가지 않길 희망한다. 협의와 숙의 없이 삼권분립을 정치화하는 순간, 민주주의와 경제 모두가 훼손될 수 있다.

지인엽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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