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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데헌' 신드롬이다. 지난 6월 공개 된 케데헌은 2개월 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영화 순위부터 세계 주요 음악 차트까지 영역을 가리지 않고 인기몰이 중이다. 영화 속 캐릭터 걸그룹 헌트릭스와 보이그룹 사자보이즈의 인기는 현실 아이돌의 그것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아 보인다.
따져보자. 헌트릭스나 사자보이즈같은 버추얼(가상) 아이돌은 무한한 체력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생활 이슈나 병역에서 자유롭다. 코로나19같은 바이러스에도 끄덕없다. 지난한 연습생 시절을 보낼 필요도 없다. 이뿐인가. 스트리밍 플랫폼을 이용하면 큰 비용이나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데뷔와 공연이 가능하다. 다양한 언어를 덧입힐 수 있는 요즘에는 이들이 언어의 벽을 뛰어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말이 통하면 문화의 장벽도 깨지는 법이니 글로벌 팬덤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도 수월하다. 콘텐츠 생산성,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현실 아이돌이 갖지 못한 강점을 버추얼 아이돌은 가졌다는 애기다. 케데헌 성공의 한 축은 이런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의 '활약'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케데헌은 K-팝이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 지를 보여줬다. OST(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수록곡 '골든'(Golden)이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1위에 올랐을 때 빌보드는 "K-팝이 장르의 경계를 벗어나 서사와 캐릭터·감정이 결합된 콘텐츠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동시에 콘텐츠 설계 방식의 변화를 주목했다.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음악과 퍼포먼스가 기획되던 과거와 달리 캐릭터 기반의 IP(지적재산권)가 먼저 설계되고 이 위에 음악이 더해지는 방식으로 제작된 것이 케데헌이라는 얘기다. 이는 K-팝 소비가 아티스트 중심에서 캐릭터·세계관 중심으로 전환되고 음악이 세계관을 탐험하는 수단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이유로 K-팝 산업 구조 역시 과거와 달라질 공산이 커졌다.
K-팝은 '우리' 것인데, 케데헌의 출발이 '우리'가 아니었다는 것은 아쉽다. 케데헌의 기획부터 제작까지 전 과정은 미국 소니픽처스 엔터테인먼트가 했다. 배급 역시 미국의 넷플릭스가 담당했다. 달콤한 '열매'를 먼저 챙기는 것도 물론 이들이다. 우리는 왜 '지치지 않는 헌트릭스'에 관심을 갖지 못했을까. 케데헌의 가치는 현재 10억달러(약 1조3900억원) 이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기에는 영화·음악·각종 굿즈 등의 가치가 포함된다.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가 최근 K-콘텐츠 국가전략산업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예술문화산업을 육성해 관련 시장 규모를 300조 원대로 확장하고 문화 관련 산업 수출을 50조원 규모로 늘리는 등 '세계 속의 K-컬처' 육성을 위해 팔을 걷어 붙였다. 대한민국을 '글로벌 문화강국'으로 만드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이에 발맞춰 업계도 심기일전하자. K-팝 소비 패턴의 변화, K-콘텐츠 산업의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과 비전을 재점검하는 데 공을 들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