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 추가 부담 수조원대…대형사만 감당 가능
중견 건설사 “소규모 정비사업 일감 위협…수주 경쟁 빨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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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같은 '추가 이주비' 부담이 시공사에 수조원대 자금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고금리 장기화로 공사비 부담이 커진 가운데 이번 대출 규제까지 더해지며, 건설사들이 서울 주요 고가 정비사업지 수주를 꺼리게 되는 악순환이 우려된다. 대형사들이 자금 부담이 덜한 소규모 정비사업 위주로 수주 전략을 틀 경우, 중견 건설사들이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8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중견 건설사들은 지난달 27일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강화 방안 발표 이후 가로주택정비사업과 모아타운 등 소규모 정비사업 수주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날 금호건설은 경기 남양주왕숙 공공주택지구 내 '남양주왕숙 3-2차 민간 참여 공공주택사업'(사업비 약 5986억원)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HJ중공업은 이달 7일 대전 '삼성6구역 재개발'(1177억원)을 따냈고, 효성중공업의 자회사 진흥기업도 지난 5일 서울 정릉동 모아타운 정비사업(1610억원) 시공권을 확보했다.
업계는 중견사들이 이처럼 소규모 사업에 사활을 거는 이유로 일감 확보 경쟁 격화를 꼽는다. 전국 부동산 시장이 침체한 상황에서도, 수요가 일정 부분 보장된 곳은 치열한 수주 경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흐름에 곧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담대 6억원 초과 금지 등 고강도 대출 규제가 시행되면서, 자금력이 풍부한 대형 건설사들마저 소규모 정비사업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특히 정부는 이주비 대출을 주택 구매 목적이 아니더라도 주담대로 간주해 규제 대상으로 삼았다. 이주비는 기존 주택을 철거하기 전 임시 거주지 마련 등을 위해 조합원이 받는 대출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전세보증금이나 매입 자금으로 전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번 규제에 포함했다.
반면, 시공사가 조합원에게 지원하는 '추가 이주비'는 규제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이 부담이 고스란히 시공사로 넘어가며, 수주 부담을 키운다는 데 있다. 실제 이주비 부족분을 채우기 위한 추가 자금이 수조원에 달할 수도 있어, 시공사는 회사 신용으로 이를 조달해야 한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추가 이주비 지원 부담이 커지면, 자금력이 약한 중견사들은 재건축 수주에 나서기 어려워지고, 결국 대형사 위주의 정비시장 재편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 역시 "브랜드 인지도나 자금력에서 대형사와의 격차가 큰 상황에서, 이들이 소규모 정비사업에 진출하면 중견사들은 사실상 생존 자체가 어려워진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공급 확대를 위한 정부의 방침과 달리 이번 규제로 정비사업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은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이번 대책에 따라 자금 여력이 있는 건설사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며 "정비사업 내 자금 경색이 현실화할 경우 공급 확대 정책과도 충돌하게 될 수 있는 만큼, 대출 규제의 세부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