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연재] 수레바퀴는 왜 하필 메소포타미아에서 발명되었나?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2.asiatoday.co.kr/kn/view.php?key=20250105010001965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5. 01. 05. 17:42

외계인에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23회>
고대 메소포타미아 유물
기원전 2500년경으로 추정되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유물.
2024122201001972100122703
송재윤(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
◇자동차에 관한 명상

시속 100㎞로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쏜살처럼 지나가는 창밖 풍경을 보며 시심(詩心)이 일어 읊조린다. "굴러라, 굴러, 둥근 바퀴야, 지구처럼 쉬지 말고 힘차게 굴러!" 휘발유를 활활 태워 육중한 쇳덩이를 씽씽 달려가게 하는 네 바퀴 자동차는 지구인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중요한 현대의 발명품이다. 19세기 이래 자동차의 생산은 여러 나라 수많은 인재가 머리를 맞대고 서로 베끼고 배우며 다 함께 이뤄간 집체적 창작 과정이었다.

19세기 이래 자동차 개발에 참여한 무수한 발명가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로 수십만 건의 특허증을 발급받았다. 2002년부터 20년간 토요타자동차가 취득한 발명 특허가 무려 23만여 개라니 더 무슨 말을 하리. 한데 그 수많은 발명 특허는 사실 굴러가는 바퀴 위에 올라탄 부산물일 뿐이다. 자동차의 심장이 엔진이라 말하지만, 엔진의 효용은 바퀴 덕분에 생겨났다. 내연기관 없는 자동차는 이미 구현되었지만, 바퀴 없는 자동차는 아직 상상할 수가 없다. 제아무리 최첨단 장비를 갖췄다 해도 자동차는 결국 바퀴 달린 동체일 뿐이다. 바로 그 점에서 자동차의 역사는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 출현한 수레로 연결된다. 메소포타미아 수레는 다시금 그보다 500년 전쯤 도공들이 사용했던 윤대(輪對, potter's wheel), 곧 그릇을 빚는 돌림판에서 연원했다.

◇"도는 어디에나 있다!"

인류사 최고 발명품임에도 바퀴를 최초로 만든 인물이 누구인지 지구인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도 바퀴를 만든 단 한 명을 특정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둥근 물체를 땅위에 놓고 굴리면 잘 굴러간다는 사실은 이미 수십만 년 전부터 널리 알려진 지구인의 상식이었음이 분명하다. 지구인뿐만 아니라 지구 위의 하찮은 벌레조차도 그 원리를 터득해서 생존의 비법으로 삼기 때문이다. 가령 여러 짐승의 똥을 먹이 삼는 쇠똥구리는 쇠똥이나 말똥을 경단으로 만들어 데굴데굴 굴리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쇠똥구리가 만든 말똥 경단은 거의 완벽한 구(球, sphere)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쇠똥구리는 어떻게 똥으로 경단을 빚는 재주를 터득했을까?

신비로운 곤충의 세계 속에 자연의 법칙이 숨어 있다. 지구상 모든 물체에 한순간도 어김없이 일관되게 적용되는 중력(重力, gravity)의 작용 결과다. 쇠똥구리가 말똥 덩이를 떼어서 밀면 둥글게 말려 결국 구슬 모양으로 돌돌 말리게 된다. 왜 그러한가? 매미, 비둘기, 나비, 물고기 등 자연의 여러 생명체를 등장시켜 자연계와 인간세(人間世)의 진리를 드러내는 장자(莊子)가 익히 말했듯, 세상의 도(道)는 언제 어디서나 있다. 개미, 강아지풀, 깨진 기와나 벽돌에도, 심지어는 똥과 오줌에도 도가 있다.

지구인이 바퀴의 원리를 터득하는 과정도 쇠똥구리가 말똥 구슬을 만드는 과정과 다를 수가 없다. 사과든, 오렌지든, 공기 넣은 방광이든 둥그런 물건은 굴리면 굴러간다. 지구인은 문명이 형성되기 수십만 년 전, 아니 수백만 년 전부터 바퀴의 원리를 터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진정한 역사적 문제는 지구인들이 과연 언제부터, 어떤 과정을 통해서, 어떤 목적 위에서 바퀴를 교통수단으로 활용하게 되었냐이다. 도공의 돌림판을 수레바퀴로 바꾼 사건이야말로 지구의 문명사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바퀴를 운송 수단으로 활용하게 되면서 지구인의 생활은 가히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차크라바탄, 바퀴를 돌리는 성왕

힌두 신화에서 신성한 바퀴를 의미하는 차크라(Chakra)는 비슈누(Vishnu) 신과 깊은 연관이 있다. 브라흐마(Brahma)는 우주를 창조하고, 시바(Shiva)는 우주를 파괴하고, 비슈누는 우주를 유지하는 신이다. 우주를 유지하기 위해서 비슈누가 사용하는 바퀴가 바로 차크라이다. 우주의 운행을 관장하는 비슈누의 이미지에 왜 하필 바퀴의 상징이 사용되었을까? 확증할 순 없지만 비슈누의 차크라는 수레바퀴가 이미 널리 사용된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메타포가 아닐까 싶다. 수레바퀴가 일상생활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우주의 운행을 관장하는 비슈누가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다 상상했을 듯하다.

기원전 2000년에서 1100년 사이에 형성된 고대 인도 바라문교의 경전 베다(Veda)에는 차크라바르틴(Chakravartin)이 등장한다. 산스크리트어로 차크라는 바퀴를 의미하며, 바르틴(vartin)은 돌리는 자를 의미한다. 차크라바르틴의 전통적 한역(漢譯)은 전륜성왕(轉輪聖王)이다. 바퀴를 돌리는 위대한 왕이라는 의미다. 땅위에서 바퀴가 거침없이 굴러가듯 차크라바르틴은 인간사를 잘 돌아가도록 관리하는 임금을 가리킨다. 바퀴를 굴리는 행위가 좋은 통치의 메타포가 되었을 때는 이미 수레바퀴가 운송 수단으로 널리 사용된 이후라고 여겨진다. 수레바퀴의 효용을 익숙하게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만이 통치 행위를 바퀴 굴리기에 비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토기를 빚을 때 사용된 돌림판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토기를 빚을 때 돌림판이 사용되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레바퀴

고고학 발굴에 따르면, 최초의 수레바퀴는 3500년 전 메소포타미아로 소급된다. 모든 고대 문명의 유적지에서 발굴된 수레바퀴의 흔적은 그 이후로 추정된다. 고대 아메리카의 잉카문명에서는 묘하게도 수레바퀴가 사용된 흔적이 지금까지 발굴되지 않았다.

대신 19세기 말 잉카 유적지에서 발굴된 토기 호루라기와 장난감을 보면 서기 8세기 무렵 이미 잉카인들은 수레바퀴의 개념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유물들에 근거해서 1940년대 일부 고고학자들은 메소아메리카에서 독자적으로 수레바퀴를 발명했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아직도 정설로 받아들여지진 않고 있다.

한 사회에서 수레바퀴가 널리 활용되기 위해선 단순히 개념만으론 불충분하다. 그 개념이 구현되어 실제 현실 세계에서 수레바퀴가 되어 굴러가기 위해선 여러 세대에 걸친 공학적 실험뿐만 아니라 수레바퀴가 활용될 수 있는 도로망이 구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파른 산비탈과 울퉁불퉁한 돌길이 많았던 잉카에선 수레바퀴를 사용하기보단 라마나 알파카 등의 가축에 짐을 싣고 가는 편이 훨씬 수월했다. 반면 납작한 넓은 평지가 펼쳐진 메소포타미아의 지형을 보면 손쉽게 넓은 길을 닦을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형상 메소포타미아가 메소아메리카보다 수레바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기에 편리했음은 불문가지다. 고대 문명 어디에서나 바퀴의 원리는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하필 메소포타미아에서 일찍부터 수레바퀴가 운송 수단으로 실현된 이유는 무엇일까?

땅의 생김새만 갖고서 수레바퀴의 발명을 설명하려 들면 지리가 세계사 모든 문명의 차이점을 결정한다는 단순 환원론에 그치고 만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수레바퀴가 운송 수단으로 널리 활용된 이유는 평평한 지형 외에도 경제적 풍요, 원거리 교역의 필요, 도시국가의 유지·발전에 따른 정치적 동기 등을 꼽을 수 있다. 여러 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형성되면서 활발하게 원거리 교역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었고, 또 주변 농촌에서 생산된 대량 곡물을 도시국가의 중심부로 옮기게 되면서 짐꾼이나 가축에 의존하는 데 머물지 않고 짐수레를 만들어서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할 수 있다. 돌출적인 한 천재의 상상력이나 특정 장인 집단의 실험정신만으로는 수레바퀴가 일상적으로 활용될 수는 없었다. 수레바퀴는 총체적인 문명적 기획이었다. 오늘도 승용차를 몰고 도로를 달리면서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장구한 문명사의 슬기를 되새긴다. "굴러라 굴러, 둥근 바퀴야, 지구처럼 쉬지 말고 힘차게 굴러!"

송재윤(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