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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파트 공화국’ 비아냥거리기 전에 왜 그런지 살펴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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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10. 23. 17:50

정수연제주대학교
정수연(제주대 경제학과 교수)
추석연휴 때 특집영화로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방영됐다. 많은 이들이 보면서 한국 사회 축소판이라 여겼을 것이다. 정말 그랬다. 작금의 시장상황에 딱 맞는 영화였다. 내구연한 30년 넘은 시설물로 가득한 서울시는 이제 곳곳에 싱크홀이 생기고 있건만 사람들은 목돈을 싸들고 아직도 서울 아파트로만 몰려들고 있다. 집은 반드시 아파트여야만 하고 신축이어야만 한다. 이 시점에 누군가는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처럼 아파트 공화국이 문제고 콘크리트 건물더미가 경관을 해친다며 사람들의 눈높이가 낮고 천박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처럼 아파트는 한국사회의 축소판일 뿐이다. 그 안에 모든 문제가 응축되어 있다.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에게 직장이 가깝고 어린이집이 가까운 건 필수다. 그래야만 24시간 중 단 한두 시간이라도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출퇴근에 하루 두 세 시간을 써야 한다면 로봇이 아닌 이상 번 아웃(burn out)이 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한국 대부분의 일자리가 집중된 서울, 한강 이남이 최고다. 산속 공기 좋은 주택에는 어린이집 차가 오지 않는다. 모여 있는 곳이어야 한다. 어린이집 차도 제한된 시간에 여러 곳에 정차하는 동선(動線)을 짜야 하니 아파트 단지에는 잘 온다. 학원 차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아파트 단지에서는 학부모가 어린이집도 고르고 학원도 고를 수 있다.

그러나 한적한 도시외곽의 단독주택, 10 여 채 남짓한 빌라에 사는 학부모는 선택권이 없다. 학원 차, 어린이집 차가 우리 집 앞에 정차해 주기를 기도할 뿐이다. 어린이집이, 학원이 학부모를 고른다. 아파트에 집중되는 우리네 삶은 교육제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는 한국의 교육제도가 아파트 선호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학원이 어디 교육만 담당하던가? 온 국민의 자녀들이 학원에 다니니 학원에 다니지 않고서는 친구를 사귀는 것도 어렵다. 학원은 사실 보육도 담당하고 있다. 퇴근이 늦는 저녁 없는 삶을 사는 맞벌이 가정에 학원은 제2의 보모이다.

아파트에는 학부모로서의 삶만 얽혀있지 않다. 노후 복지문제도 얽혀있다. 은퇴 후 국민연금은 쥐꼬리만 하고, 의료보장제도는 선진국 최고 수준이라지만 그래도 목돈은 필요하다. 60세 은퇴는 복 받은 사람들이나 해당되지, 금융권은 사오정이요, 공무원은 50대가 되면 후배들을 위한 용퇴로 불안하다. 승진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그러니 쥐꼬리 연금의 공백기에는 대체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 고민이 되니 아파트를 쳐다볼 수밖에. 단독주택이 팔리는 속도보다 아파트가 팔리는 속도가 더 빠르다. 이런 걸 유동성이 크다고 표현한다. 내가 암에라도 걸리면 팔아서 치료비로 쓸 수 있는 건 아파트다. 단독주택은 내가 죽은 다음에 팔릴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 샤이너(Sheiner, L.)와 와일Weil, D. N.의 1992년 연구, '노년층의 주택자산(The housing wealth of the aged)'에 따르면 사람들이 늙어서도 집 크기를 줄이지 않고 가지고 있는 이유는 "불시에 걸릴 질병 치료비"를 위해서라고 한다. 노후에 대한 불안은 주택자산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교육제도, 노후복지제도가 얽힌 아파트 선호를 지금까지 다들 그저 "강남아파트가 그렇게 좋으냐?"고 비아냥거리거나 아파트가 "천박한 도시를 만든다"고 비난을 퍼부었을 뿐이다. 누구도 아파트에 얽힌 교육제도, 노후복지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책을 제안하지 않았다. 주택문제, 교육문제, 노후복지 문제가 모두 연결되어 있음에도 통합된 관점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었다.

혹자는 혼인하지 않는 미래 1인 가구들 덕에 아파트 선호 집중문제가 자연스럽게 해소될 거라고도 한다. 그러나 미국 샤이너와 와일의 연구에서는 주택자산을 보유하려는 욕망은 자녀가 없는 노년가구가 자녀가 있는 노년가구보다 더 강렬하다고 말한다. 그뿐인가? 우리나라에서 빌라기피 현상은 미래 세대들에게 더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다. 빌라기피 현상은 전세 사기 때문이라고들 하지만, 부족한 주차장, 소방차도 들어가기 어려운 좁은 골목길, 밤길 치안이 걱정되는 부족한 가로등 문제는 전세 사기가 없을 때에도 빌라를 기피하는 요인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즉, 비(非)아파트 주택들의 주변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공무원들이 대대적으로 나섰던 바가 있었던가? 모두들 아파트구매로 가는 길목을 규제로 차단하거나 빌라 담벼락에 벽화를 그려줄 뿐이었다. 이번에도 아파트 시장 과열을 잠재우고자 비아파트 공급을 늘리려는 정책이 발표되었지만, 비아파트 주변 환경 개선 없이는 비아파트 공급정책에 드라이브를 건다고 해서 시장수요자들이 비아파트를 선택해 줄 리 만무하다.

아파트 공화국이 끝나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교육제도와 노후복지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단기에 되지 않을지라도 미래에 해결될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비아파트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정책을 대대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주택수요자로서 출구라고는 아파트 구매하는 것뿐인데 그 길로 간다고 탓만 할 뿐 정책하는 사람들은 다른 길을 만들어준 적이 없다. 언제까지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비아냥거리기만 하고 아파트 말고는 갈 길이 없다고 느끼는 국민들을 투기범이라 몰아붙일 것인가? 적어도 출구는 열어주고 다른 길을 가라고 해야 한다.

콘크리트 공화국에 나오는 황궁아파트는 모든 것이 무너진 서울에서 유일하게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이다. 궁극의 희소성이다. 희소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가치는 올라간다. 그 희소성을 약화시킬 수 있는 것은 황궁아파트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 대체재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수요자가 기꺼이 선택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족하는 대체재를 말이다. 정책의 방향이 규제가 아니어야 하는 이유이다.

정수연(제주대 경제학과 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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