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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미동맹간 심리적 간격과 정치적 불안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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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10. 0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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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작년이 한미 동맹출범 70주년이 되는 해였다. 국제정치사에서 동맹이 70년간 지속되었다는 것은 예외적이다. 한미동맹이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한 이유는 공통의 목표와 가치, 성과, 양국의 강력한 수호 의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대국으로 우뚝 선 데에는 누가 뭐라 해도 한미동맹이 토대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6·25 전쟁이 끝나고 1953년 10월 1일 미국 워싱턴에서 서명한 상호방위조약은 한국이 외국과 맺은 처음이자 지금까지 유일한 군사동맹조약이다. 한미동맹을 대한민국과 미 합중국 간의 조약 체결일을 기준으로 하면 작년이었으나 조약이 발효된 54년 11월 18일 기준으로 하면 올해를 70주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 시점을 기준으로 지난해를 70주년으로 보는 단체와 발효일을 기준으로 보는 단체에 따라 70주년 기념식을 올해에 여는 단체도 있다.


◇한미동맹의 역사적 배경

1953년 4월 정전회담이 포로문제로 중단되었다가 재개하자 한국정부와 이승만 대통령은 강력하게 정전을 반대했다. 국회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통일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이 대통령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한국이 단독으로라도 싸우겠다는 결의를 통보했다. 이렇게 되자 미 정부는 유사시 이승만 축출계획인 에버레디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승만은 공산군이 또다시 침략할 경우 미국이 즉시 개입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이 먼저 정전을 수락해야 상호방위조약에 대해 협상할 수 있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1953년 6월 판문점에서 포로송환 협상이 타결되고 정전협정이 굳어지자 한국 내 휴전반대 시위가 급증했다. 미국은 특사를 보내 이승만을 회유하고자 했지만 이승만은 6월 18일 반공포로 석방을 단행했다. 당황한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이승만을 달랬다. 그리고 유엔군이 한국의 이익에 배치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 한 한국군을 유엔군지휘하에 남겨둘 것을 약속했다.

당시는 국력의 차이로 한국이 미국을 도울 일은 전혀 없었다. 이는 이승만 대통령의 통찰과 혜안이었다. 이 조약으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안보 공약이 확고해졌다. 하지만 한반도 전쟁 발발 시 미군의 자동개입을 보장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이 미군을 한국에 주둔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는 걱정거리가 하나 더 있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북의 남침은 막을 수 있지만 한국의 단독 북진을 막기 위한 장치가 더 필요했다. 이를 제어하기 위한 추가 협상이 진행되어 1954년 11월 17일 한미합의의사록이 작성되어 비준서 교환이 이루어졌다.

◇정전협정과 상호방위조약 체결

전쟁의 참화를 겪고 맺은 혈맹인 한미동맹은 상호방위라는 안보와 경제를 넘어 기술과 글로벌 동맹으로 진화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동안 한미동맹의 가치관인 민주주의, 표현·종교·언론의 자유, 자유 시장경제, 인권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 물론 중간에 몇 가지 갈등도 없지 않았지만 양국이 가치를 함께했기에 동맹이 유지된 것은 분명하다.

한국에서 핵무장에 대하여 미국에 여러 가지 요구에도 불구하고 거부하는 조항이 넘사벽이고 이러한 성향은 때때로 반미감정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한미동맹이 출발할 시점에 비하여 한국의 급격한 국력성장으로 한미동맹을 불공정한 관계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한미 간에 동맹을 보는 시각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한국인들은 한미동맹과 미한동맹을 같은 비중, 즉 우리가 미국을 생각하는 만큼 미국도 우리를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은 동아시아에서 중요한 나라는 일본, 한국, 대만 순으로 추정된다. 최근 인태전략을 표방하면서 대만보다 한반도의 우선순위가 조금 밀려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중국의 패권도전을 저지하기 위한 전진기지로서 대만의 중요성 때문이다. 북한의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지만 미국의 입장에서는 대만을 연한 남중국해가 주 전선이고 경제가 붕괴된 북한은 김정은이 까불어도 부차적인 위협으로 보고 있다.

◇한미동맹에서 미래 전망과 도전 요인

미국이 최근 들어 한국에 대한 관심이 약해진 증거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유엔의 대북제재 보고서 폐기 사건이었다. 우리 외교부는 대북제재 보고서가 폐기되는 줄도 몰랐던 외교적 실패라고 평가할 수 있다. 사전에 네트워크를 통해 그 조짐을 파악하고 여론전이라도 펼쳤어야 했는데 미 국무부에 한반도를 전담하는 공직 자리가 없어졌고 그로 인하여 접촉을 유지할 네트워크가 실종되었다.

둘째는 대(對)한반도 문제에 대한 관심 저하는 국무성 내 한국에 대한 인식이 아주 약해지거나 중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는 건물구조를 보면 권력자가 무엇을 중시하는가를 알 수 있다. 미국은 백악관을 중심으로 좌측에 재무성과 조폐국을, 우측에 국무성을 배치했다. 이는 국가를 운영함에 있어서 재정과 화폐, 그리고 대외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미국은 주(駐)인도네시아 미국대사 성 김에게 한반도 문제에 대하여 겸직을 시켰다. 국무성이 한반도 문제에 관한 겸직 직위 발령은 해방 이후 처음이다. 그만큼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이는 김정은의 핵을 미국이 충분히 상황통제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이거나 조정 또는 이용한다는 증거로 보인다.

셋째는 이번 신임 한미연합사령관으로 미 육군 1군단장 자비에르 브런슨 중장을 지명한 사실을 들 수 있다. 전구사령관을 경험한 사령관이 아닌 중장을 진급시켜 한미연합사령관에 보임한 것을 두고 최근 오스틴 장관이 주일 미군사령관을 4성 장군으로 보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닌가하는 부분이다. 즉 주일미군사령관을 전구사령관 경험이 있는 장군을 임명하여 인태작전 간 주일미군사령관 통제하에 작전을 하려는 의도로 비추어진다.

넷째는 한미연합전력을 강화하기 위한 훈련장 확보에 한국 정부 및 군 지휘부가 관심을 소홀히 하여 역대 주한미군사령관들이 우리 군 지휘부에게 문제점 개선을 촉구했으나 진전이 없자 서운해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의 성향에 따라 대주변국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점, 현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개선 및 정상화와 상호협력을 추진하지만 차기 정부가 그동안 쌓아놓은 한미일 협력관계를 허물어 버릴 정치적 불안정성(Political Instability)을 우려하며 한미동맹의 도전 요소로 보고 있다.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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