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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칼럼] 금리는 시장에 맡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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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9. 23. 17:55

이경욱
아시아투데이 대기자
"금리는 돈을 빌리려는 가계와 금융사가 네고(협의)를 통해 결정하는 게 정상이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료 출신 인사가 최근 급격히 요동쳤던 대출 금리를 놓고 이런 지적을 내놓았다. 돈을 꿔주는 금융사와 대출을 원하는 고객이 철저히 수요와 공급의 원칙 아래 신용도 등 객관적 지표를 토대로 금리를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돈을 빌리려는 사람이 많으면 자동적으로 금리가 올라가게 되고 빌리려는 수요가 줄면 금리가 내려갈 수 있도록 시장의 자율적 기능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의미였다. 지금처럼 정부가 금리를 통해 부동산가격 안정 등 특정 정책 목표를 인위적으로 달성하려는 것은 금융시장 건전성과 경쟁력 차원에서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금리를 조정해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킬 수는 있다고 했다. 하지만 부동산시장 과열을 막는 방안으로는 주택 공급의 확대가 핵심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었다. 이런 공급 확대는 단시일 내 현실화할 수 없기에 정부는 전통적으로 손쉬운 대출규제를 통해 부동산시장을 안정화시키겠다는 유혹을 받기 마련이다. 이런 방식의 반복이 금융시장을 왜곡시키게 된다고 강조했다. 금융 감독당국이 할 일은 대출 전 개입이 아니라 금융사 건전성 감독이라고도 말했다.

정부는 올 들어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 아파트값이 급등세를 보이자 급한 나머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대폭 강화해 9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대출금액과 만기를 축소하는 게 주내용이다. 이런 대출 억제책은 이미 지난 7월 시행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실기(失機)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출조건 강화 전 막바지 대출수요가 급증하면서 대출억제를 위해 금융 감독당국이 부동산대출 금리를 올릴 것을 금융사에 압박했고 금융사들은 감독당국에 밉보이지(?) 않기 위해 선제적으로 앞다퉈 대출금리를 마구 끌어올리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금융사들은 불과 한 달 새 무려 20여 차례 금리를 올리기도 했다. 지난 7월 이후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은 대출 금리를 22차례 올렸다. 30여 차례 올린 곳도 있다고 한다. 금융사들이 돈을 구하는 조달금리가 내려가고 있었는데도 이 기간 신한은행은 주택담보대출 최저금리를 1.18%포인트, 우리은행은 1.27%포인트 각각 올렸다. 대출자 입장에서는 1억원을 대출받으면 120만원 안팎 연 이자를 더 내야 한다.

이러는 사이 부동산대출이 필요한 실수요자들은 때 아닌 금리 급등과 대출 제한의 고통을 떠안게 됐다. 통상 정부가 정책을 시행하다 보면 이익을 보거나 반대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일부 전문가의 분석처럼 부동산가격 상승 현상은 지난해 말부터 있었고 이에 선제적 '소프트랜딩(soft landing)' 조치가 시행됐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과정에서 자금 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A씨는 부동산담보대출이 필요한 실수요자다. 부동산가격이 상승세를 타자 아파트를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여기저기 담보대출을 알아보는 사이 금리가 거의 30% 폭등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금리 비교를 하고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은 금융사 문을 두드려 봤지만 금리가 거의 매일 오르는 바람에 희망했던 금리는 물 건너갔다. 이달부터 DSR이 강화돼 대출금액도 줄었다. 금융사에는 요즘 부동산대출 상담 전화가 빗발친다고 한다. 1금융권 대출이 묶이자 생보사 등으로 대출 문의가 몰리고 있다고 한다. A씨처럼 어려움을 겪는 실수요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금융권이 대출 금리를 급격히 올리면서 이른바 '예대마진(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차이)' 역시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사 속성상 금리인상 속도는 늘 금리인하 속도보다 빠르다. 정부의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에 편승해 예대마진 확대라는 손쉬운 수익 챙기기에 나서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 지나친 예대마진이 금융사 수익으로 연결돼 은행원들의 급여 인상만으로 이어진다면 이 또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금융사는 일정 수준을 넘는 예대마진 일부를 사회공헌에 과감히 투입해 사회적 책무에 상응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정부가 대출금리와 예금금리 인상 또는 인하가 너무 동떨어지지 않도록 관련 근거를 토대로 적절히 개입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관치가 아니라 정부의 책무다. 박충현 금감원 부원장보가 최근 "대출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문제에 대해서 언급한 적 없고 당국이 개입할 내용이 아니다. (가계부채에) 손쉽게 대응할 수 있는 대출금리 인상 영업형태는 부적절하다. 손쉽게 이익을 늘리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이미 '빅컷'(0.50%포인트 금리인하)을 단행해 금리 하락기 도래를 예고했다. 각국도 미국의 행보에 발을 맞추려고 할 것이다. 이런 글로벌 금리 하락기에 우리의 대출억제를 위한 대출금리 인상은 과연 언제까지 유효할까. 이런 땜질식 금융정책이 우리 금융시장의 경쟁력을 얼마나 훼손할지, 또 실수요자들은 얼마나 더 불안에 떨어야 할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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